메릴린치는 1977년 최초로 내놓은 자산관리계좌(CMA) 상품의 인기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투자은행으로 성장했다.

업종 간 영역을 허물수 있도록 허용한 규제 개혁과 이에 대응한 혁신이 이를 가능케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0년대 메릴린치는 증권업계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익구조 악화에 시달려야 했다.

대규모 투자에 따라 경비 지출이 늘어난 데다 은행마저 경쟁 상대로 부상하면서 돌파구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주식 계좌로 은행 업무를 연결한 CMA를 개발했다.

메릴린치 CMA는 미국에서 업종 간 영역을 허문 최초의 상품으로 인정 받고 있다.

고수익 단기 자금을 운용할 뿐 아니라 신용카드,수표 발행을 위한 당좌기능도 갖고 있다.

유가증권 매매라는 증권계좌 기능은 기본이다.

은행계좌에서부터 투자 매매 보험 대출 카드계좌 기능까지 더해진 상품이다.

하지만 메릴린치 CMA가 처음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끈 건 아니었다.

위탁중개인들이 주식 거래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는 공격적 성향을 갖고 있어 고객에게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금융 상품인 CMA 계좌의 개설을 권유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 고객들도 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면서 관심이 높아졌고 비자카드의 편리성을 고객들이 맛보게 됐다.

또 위탁중개인들도 고객의 CMA 잔액이 늘수록 주식이나 채권 상품에 투자할 관리 자금이 증가한다는 인식의 변화가 뒤따랐다.

CMA는 출시 6년 만에 100만계좌를 돌파했고 연 6000만달러 이상의 수수료 수입과 200억 달러의 자금이 유입됐다. 1983년에는 메릴린치 CMA가 전체 시장의 90%를 장악할 정도였다.

이후 다른 증권사들도 메릴린치에 특허 수수료를 지급하면서 이 상품을 도입했고 은행들도 유상상품 서비스인 PAA 상품을 내놓는 등 유사상품이 자리를 잡아갔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