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제국은 몰락하는가.'

아무리 찔러도 흠 하나 날 것 같지 않던 이창호 9단(31)의 철옹성에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이런 조짐은 지난달 22,24일 중국 상하이에서 벌어진 제10기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이미 나타났다.

상대는 중국의 창하오 9단.이 대국 전까지 창하오를 상대로 20승5패의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 이 9단이었지만 이번 결승전에선 이렇다 할 힘 한번 쓰지 못한 채 2대0으로 완패,지난해에 이어 우승컵을 내주고 말았다.

세계대회 결승에서 이 9단이 지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한 판도 이기지 못하고 영패를 당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부진은 곧바로 국내 기전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31일 펼쳐진 제50기 국수전 결승 2국에서 이 9단은 도전자 윤준상 4단을 맞아 뼈아픈 반집패를 당하며 종합전적 2패로 타이틀을 뺏길 위기에 내몰렸다.

이창호 9단의 부진을 두고 바둑계 일각에서는 '승부에 대한 권태로움'에서 해답의 일단을 찾고 있다. 간단히 말해 이창호는 바둑으로 이룰 만한 것은 다 이뤄본 사람이라는 얘기다.

바둑TV의 김지명 캐스터는 "방송 진행을 하면서 이 9단이 승부를 지겨워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1986년 입단했으니 이 9단도 어느덧 바둑세계 밥을 먹은 지 20년이다.

정상에 선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절대고독 속에서 15년 이상을 버텨온 사람이 이창호다.

그도 인간인 만큼 권태기에 빠져들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바둑 외적인 부분,즉 결혼이나 넓어진 인간관계에 대한 관심도 바둑과 승부만을 위해 앞으로 달려온 이 9단에겐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창호는 2006바둑대상 시상식에서 "바둑 외에 올해는 다른 쪽에도 관심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본인의 말처럼 이 9단은 최근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결혼 후 부쩍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한 창하오 9단과 이세돌 9단에게 적지 않은 자극을 받았다고 보는 팬들이 적지 않다.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이 9단은 "곰 같은 여자보다는 여우 같은 여자가 좋다"며 보기 드물게 구체적으로 답하기도 했다.

이 9단에 대한 치밀한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돼 온 점도 과거처럼 '반상의 독재자'로 군림하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여기에 30대에 들어서면서 이전보다 떨어진 집중력과 계산력도 1인자의 명성에 간혹 흠집을 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전설의 추락'을 말하기에는 이르다는 설이 중론이다.

이 9단과 친분이 두터운 김영삼 7단은 "앞으로 2~3년은 더 지켜봐야 한다.

타이틀 하나 없고 이름 없는 기사들과의 대국에서도 번번이 지게 될 때 그때 이창호의 시대는 갔다고 얘기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