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기업의 입장에서는 당장 생존조차 어려운 판에 장수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장수기업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고,그 비결은 늘 관심의 대상이 돼왔다.

400~500년은 물론이고 1000년이 넘게 지속한 기업들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미국 브라이언트대학의 윌리엄 오하라 교수가 쓴 '세계 장수 기업,세기를 뛰어넘은 성공'(주덕영 옮김,예지)은 바로 이런 기업들의 사례를 조사한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룬 기업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가족기업이라는 사실이다.

가족기업은 창업 및 승계,생산활동 자체가 가문의 구성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기업을 말한다.

혈연관계인 가족은 계약관계인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기초단위이자 출발점이다.

혈연은 계약 이전에 존재하며,계약보다 더욱 원초적이고 강력하다.

그렇다면 혈연관계와 계약관계 중 어느 것이 기업의 기반으로서 더 우월할 것인가? 물론 양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것이므로 한 가지의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 대부분은 계약관계에 기반을 둔 차가운 기업의 모습에만 너무 익숙하다는 것이다.

대량생산과 시스템적 관리,복잡한 조직과 거대 인원의 차가운 이미지가 그런 것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 힘입어 살면서도 나날이 그에 대해 절망하기도 하고,때로는 온갖 사회적 저주를 퍼붓기도 하는 대상이 바로 현대 사회의 계약형 기업들이다.

계약형 기업사회에 절망한 사람들에게 가족기업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백제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창립한 후 1400여년을 이어온 사찰건축의 명가 곤고구미(金剛組),007영화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의 명품 권총을 제작한 베레타(1368년),수백년의 전란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알사스 지방의 와인 명가 위겔 에 피스(1639년) 등 20개 기업을 엄선해 그들의 성장과정과 경영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가족기업이라고 해서 모두 건강한 기업,장수기업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구성원 간의 갈등,시야의 협소화와 그릇된 의사결정,경영환경의 예기치 않은 악화 등은 가족기업에도 언제나 닥칠 수 있다.

이 책에는 이들 기업이 그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서 오늘에 이르렀는지가 잘 소개되어 있다.

특히 각 장의 말미에 해당 기업의 성공비결을 간명하게 요약하고 있어 나날이 참고하는 경구(警句)로 삼을만하다.

'보수적인 재무관리를 견지하며 빚지는 것을 피한다''경영에 참여시키기 전에 외부세계를 경험하게 한다''차세대 명장을 확보하기 위해 훈련을 철저히 한다''배우자는 사업의 어려움과 시련을 이해하는 사업가 집안에서 택한다''문자로 쓰여진 사명선언문을 갖춘다''외부 자문단을 갖춘다'.

이는 비단 가족기업에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라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자 하는 모든 기업과 비영리 단체들도 눈여겨 봐야 할 사항이다.

피터 드러커 교수도 시사했듯 경영의 원리는 근본으로 돌아가면 영리법인,비영리단체,가족기업을 막론하고 한결같기 때문이다.

432쪽,1만9700원.

송경모 한국신용정보 S/F평가실장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