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8월29일 미국 뉴욕 우드스톡 야외공연장.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가 나오더니 4분 33초 동안 건반은 건드리지도 않고 피아노 뚜껑만 열고 닫다 일어섰다.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발표되는 순간이었다. 연주가 아닌 뚜껑 여닫는 소리와 웅성거림도 음악일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10년 뒤인 62년,한국 출신의 젊은 예술가 백남준씨가 독일 공연 도중 스승인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싹둑 잘랐다. 그리고 지난해 2월3일,백씨의 영결식이 열린 뉴욕 맨해튼 프랭크 캠벨 장례식장에서 오노 요코(존 레넌 부인)를 비롯한 400여명의 조문객은 일제히 옆사람의 넥타이를 잘랐다.

피아노 뚜껑 여닫기나 넥타이 자르기는 형식 내지 관념의 파괴를 의미한다. 이날의 퍼포먼스는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의 구축자로서 일생동안 서구의 기존 예술을 둘러싼 모든 껍데기와 허울,권위주의에 과감하게 도전했던 백씨에 대한 따뜻하고도 뜻깊은 추모행사였던 셈이다. 퍼포먼스(performance)란 바로 이런 것이다.

퍼포먼스의 사전적 해석은 실행,연기,공연 등. 미술 음악 연극 등 전통적 장르로 충족시키기 어려운 표현 욕구를 신체를 매개로 표현하는 행위다. 해프닝과 이벤트,플래시몹(한꺼번에 모여 특정행위를 하고 흩어지는 것)도 퍼포먼스의 범주에 속한다. 언제 어디서 이뤄지든 분명한 메시지를 갖는다.

98년 백악관 방문시 백씨가 클린턴 대통령에게 인사하기 위해 휠체어에서 일어나는 순간 바지가 흘러내려 알몸이 드러난 것도 르윈스키 사건을 염두에 둔 '준비된 퍼포먼스'였다는 것 등이 그렇다. 국내에선 67년 청년작가연립전 이벤트가 시초로 돼 있고,정강자 무세중씨 등이 앞장섰다.

백남준씨의 1주기를 맞아 열린 추모행사장에서 용인시장이 만취상태로 노래까지 부른데 대해 부인이 "퍼포먼스로 봐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퍼포먼스라는 게 그저 상식을 뒤엎는 행동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퍼포먼스를 통해 평생 삶과 예술의 본질을 말하고자 했던 고인의 심정은 어땠을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