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열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온건파인 이석행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새 민주노총위원장에 당선됐다.

민주노총의 핵심 세력을 형성하는 대기업노조가 '온건노선'의 지도부를 선택했다는 점은 그동안 강경 일변도였던 노동 현장의 정서가 크게 변한 것으로 해석된다.

강경 투쟁을 선호하던 전교조가 지난 연말 온건성향의 지도부를 뽑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앞으로 3년간 민주노총을 이끌어갈 '이석행 호(號)'는 막가파식 강경노조에 비판적인 국민적 시선을 의식, '통합의 노동운동'을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신임위원장이 27일 새벽 당선 기자회견에서 "파업은 수단이지 목표가 될 수 없다"고 밝힌 대목도 이러한 흐름을 읽게 한다.

그러나 이 위원장이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우선 '투쟁의 덫'에 빠진 좌파세력들을 어떻게 대화창구로 끌어들이는가가 시급한 해결 과제이다.

또 산별노조 확대에 따른 갈등 해소,비정규직 보호,한국노총과의 통합 등도 이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새 집행부가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다.


○노·사·정 관계 청신호

국내 강성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노총 위원장에 온건파가 당선된 것은 향후 국내 노동운동의 흐름뿐 아니라 국가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위원장은 제4기 집행부 이수호 위원장 시절 사무총장을 맡으며 대화를 통한 노동운동을 강조해온 만큼 그의 당선은 협상파트너인 재계와 정부 관계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동응 한국경총 전무는 "온건파가 위원장에 당선됐다는 것은 일반 노동자들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라며 "앞으로 투쟁지향적인 노동운동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한햇동안 10여차례가 넘는 정치파업을 주도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왕따' 취급을 당하며 상급단체로서의 지도력을 잃은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온건파의 등장은 민주노총에 새 바람과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란 분석이다.

또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위원장도 당선 직후 "무조건 대화를 거부할 수 없다.

사안별로 대화에 참석할 수 있다"고 밝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비정규직법 후속 입법 등 현안이 산적한 마당에 민주노총을 배제하기 곤란한 정부도 온건파 위원장 당선을 반기는 분위기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

이 위원장은 내부적으로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조화를 통한 내부통합을 이뤄야 한다.

민주노총 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갈등은 심각한 상황이다.

사회적 대화 참여 여부를 묻기위해 이수호 위원장 시절인 2005년 2월과 3월 열릴 예정이던 대의원대회가 강경파의 반대로 잇따라 무산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노동해방과 계급투쟁을 주장하는 중앙파와 현장파는 틈만나면 총파업 연대투쟁을 부르짖고 있다.

따라서 조직이 살아나기 위해선 이석행 집행부가 강경파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미 국민들은 강경파들의 '파업을 위한 파업'에 신물이 난 상태이다.

노동권력을 앞세운 비리의 청산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국내 최대 노조인 현대차 노조의 납품비리에서 보여지듯 도덕성 추락 등이 겹쳐서 민주노총에 대한 호응은 바닥을 기고 있다.

여기에 조직 내부적으로도 파업참여율 하락, 잇따른 노조 탈퇴 등 파열음이 난지 오래다.

조직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이어서 이를 하루빨리 해결하지 못한다면 민주노총은 왕따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민주노총이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으려면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일반 국민에게 다가설 수 있는 방향으로 진로 수정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과의 관계 복원도 조심스럽게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