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국 협상단이 대혼란에 빠졌다.

국회 한·미 FTA 특별위원회에만 비공개로 보고한 협상 전략('고위급 협의 주요 결과 및 주요 쟁점 협상 방향') 보고서가 고스란히 외부에 누출됐기 때문이다.

미국 협상단은 이를 번역해 전원 일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훈 한·미 FTA 한국 수석대표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웬디 커틀러 대표가 아침에 '꼼꼼히 잘 봤다'고 얘기하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보고서는 국회 특위에 참여한 인사가 협상 중단을 유도하기 위해 유출시킨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중론이다.

○무역구제는 협상카드?

이 보고서는 지난 7~8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캐런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김종훈 한국 수석대표,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하와이에서 열렸던 고위급 회담 결과와 한국의 대응전략을 담고 있다.

각 분과별로 나눠 △무역구제 '우리 요구사항이 사실상 수용될 수 없다는 것 확인,관심사항 반영이 어려울 경우에도 여타 분야 협상에 활용하기 위해 미국쪽을 계속 압박한다' △섬유 '미국이 섬유 제품 관세를 조기에 철폐하거나 원산지 기준의 예외조항을 삽입해주면 우리는 섬유 세이프가드와 우회수출방지 규정을 도입하자는 미국측 요구를 들어주는 것 고려한다'는 등으로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최경림 투자분과장(외교부 FTA 제1교섭관)은 "주머니를 다 털어 보이고 나가는 꼴로 (협상력이) 대폭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누가 흘렸나

이날 유출된 보고서는 국회 특위용이다.

특위 위원은 송영길 간사 등 열린우리당 10명,윤건영 간사 등 한나라당 8명과 민노당 심상정 의원,민주당 신중식 의원 등 20명이다.

이들과 이들의 보좌관 1인,그리고 통일외교위원회 일부 전문위원만 보고서를 볼 수 있다.

이들은 지난해 6월 '비밀유지 서약'을 하고 특위 활동을 시작했다.

또 모든 보고서는 비공개 특위가 열렸을 때 의원들에게 건네진 뒤 회의가 끝나면 회수돼 국회 내 별도 캐비닛에서 철저히 관리된다.

특위 관계자는 "오는 26일 특위에서 유출자와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라며 "자료를 열람한 사람들의 기록이 남기 때문에 유출자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FTA를 반대하며 협상장인 신라호텔 앞에서 농성 중인 민노당 심상정 의원은 "비공개 문서 전략까지 언론에 나온 마당에 협상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 유감 표명

김 대표는 "국회 자료를 만들 때는 유출될 것까지 염두에 둔다. 협상을 잘해 정보 유출자가 '이게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다른 협상 결과가 도출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걱정스러운 모습이었다.

미국의 경우 USTR가 FTA 진행상황에 대해 수시로 의회 내의 COG(Congressional Oversight Group)에 보고하지만 보고 내용은 엄격히 비공개되고 한 번도 흘러나온 적이 없다.

미국은 의회에 보고한 문건이 유출될 경우 민·형사상 책임까지 묻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