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돼왔던 고건 전 총리가 16일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함에 따라 여권의 정계개편과 대선후보 선출 문제 등 차기 대권 구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열린우리당은 범여권의 대선주자로서 유일하게 두자릿수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고 전 총리의 중도하차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고 전 총리 측과 연대를 모색해왔던 여당 내 강경 통합신당파와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지금까지 그려왔던 그림을 바꿔 새 판을 짜야 할 상황에 처했다.

◆현실정치 벽 높아 =고 전 총리는 무엇보다 현실정치의 벽을 실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날 일문일답 형식의 서면 자료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의 가장 큰 이유로 "기존 정당의 벽이 높아 현실정치의 한계를 느꼈다"는 점을 들었다.

실제 그는 국민통합신당 원탁회의 구성을 주도해 범여권의 중도실용개혁 세력을 하나로 묶는다는 구상이었지만 현실 정치인들의 참여가 지지부진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급속히 떨어진 지지율도 중도 사퇴의 원인이 된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 이전까지 고 전 총리는 30%를 넘는 지지율로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달렸지만 올해 초 실시된 각종 조사에서는 지지율이 반토막났다.

특히 현재 구도에서 지지율을 반등시킬 만한 뾰족한 묘수가 없다는 점이 '고(GO)'를 외치는 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여권 정계개편 새 국면으로=여당 내에서는 고 전 총리의 중도 사퇴로 선도탈당론의 동력이 약화되고 신당 논의에도 일정한 차질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통합신당론의 한 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여권에서 진행하고 있는 정계개편 논의의 중심 축에는 고 전 총리가 있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모두 제3지대에서 고 전 총리와 함께 통합신당을 추진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고 전 총리의 자리를 메울 새로운 명분을 찾지 못하면 노무현 대통령과 당 사수파의 '도로 지역당' 주장에 묻혀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통합신당파 일각에서는 오히려 통합신당 작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고 전 총리의 중도하차가 혼란에 빠진 당을 결속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란 주장이다.

반면 당 사수파는 통합신당 쪽으로 흐르던 당내 여론을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 전 총리의 중도 포기는 여권의 대선 판짜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새로운 대안후보를 물색하기 위한 움직임 속에서 김근태 의장,정동영 전 의장,천정배 의원 등 잠룡(潛龍)들의 용틀임이 본격화되는 등 군웅할거식 경쟁이 점쳐진다.

여당의 한 의원은 "여권의 대선주자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당 안팎의 가능한 인사들이 완전경쟁을 통해 탄생할 것"이라며 "정운찬 박원순 등 외부 인사와 김혁규 이해찬 유시민 등 당내 인사까지 포함해 후보군의 외연이 대폭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동균·노경목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