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전쟁,분단의 상처를 딛고 선진국 수준으로 괄목 성장한 한국과 패전 이후 가장 극적인 근대화를 일군 비(非)서양권 유일의 경제대국 일본.

그러나 두 나라는 수많은 이해관계의 씨·날줄과 역사적인 명암(明暗) 때문에 아직까지 '가깝고도 먼 이웃'이다.

여기에 중국과 인도의 급부상이라는 새로운 파도가 덮치고 있다.

'중화권'과 '히말라야권'으로 상징되는 이들의 도전은 한·일 양국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신간 '일본친구들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김진현 지음,한길사)는 이제 한국과 일본이 전 지구적 차원의 미래를 열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언론인 출신의 전 과학기술처 장관.서울시립대 총장과 한국경제신문 회장,문화일보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세계평화포럼 이사장과 한국무역협회 연구자문위원장,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한·일 공동의 집짓기'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쳐온 두 나라가 지속 가능한 삶의 대안을 창조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1963년 이후 120회 이상 일본을 방문,양국 관계의 뿌리를 실질적으로 체험한 그의 대안은 매우 구체적이다.

그는 나카소네 전 총리의 핵개발 정책과 정치인들의 신사 참배 배경을 밑바닥부터 추적하고 맥아더의 기독교 선교가 일본에서 실패한 이유와 '크리스천 팍스 코리아나'를 꿈꾸는 한국 기독교의 대비,일본보다 30만명이나 많은 이공계 대학생,4만명이나 더 많은 해외 유학생,2000배 차이에서 4배 차이로 좁힌 한·일 기술 격차 등의 비교 데이터를 짚어가며 '미래 공동의 집' 설계도를 내놓는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수교 40년이 넘었지만 독도 문제와 역사교과서 등 양국을 둘러싼 갈등의 골은 깊기만 하다.

따라서 그는 양국 관계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 일본 '천황'의 결단이 시급하다며 이른바 '역(逆)메이지 유신'인 '아키히토 선언'을 촉구한다.

"도쿄의 지배층이 '천황의 신화' 속에 국민들을 가둬 놓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국민이 평화롭게 근·현대사의 족쇄에서 해방되고 국제협력을 이루려면 보수세력의 변화가 필수적인데 이를 가능케 하는 권위는 '천황'만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키히토 천황이 직접 태평양전쟁의 궁극적 책임을 인정하고,야스쿠니 문제 해결 방안을 선언하며,정교 분리의 헌법에 맞도록 신도와 황실의 관계를 단절하고,천황의 칙사가 2차대전 교전국과 피해 당사자국들을 찾아가 사죄하는 '4대 결단'이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

그는 역사문제 해결 없이 양국 관계가 이대로 고착된다면 공멸이 있을 뿐이라며 관계 정상화가 늦어질수록 손익계산서는 서로에게 적자 투성이일 것이라고 경고한다.

아울러 "아시아 각국 정부와 NGO(비정부기구)도 일본 황실과의 외교채널을 구축하고 끈질기게 황실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332쪽,2만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