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가게 하나를 여는 데에도 최소한 몇 달씩 준비를 해야 하는데 새로운 세계로 가는 출발선인 죽음을 맞이하면서 준비할 게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데도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환자나 가족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지요."

지난 2일 경기도 포천 신읍동의 모현의료센터.원장인 박삼화 스텔라 수녀는 호스피스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죽음이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이며 그만큼 소중한 시기이므로 준비를 잘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실제로는 말기 암환자 등 죽음을 앞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삶을 충분히 정리하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죽음을 맞는 것이 현실이다.

2005년 6월 문을 연 모현의료센터는 국내 최초의 호스피스 전문 병원.'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관구장 장귀옥 수녀)가 설립한 병원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입체적으로 지원해준다.

이 병원의 특징은 환자가 주인이라는 점.3층 건물인 병원의 3층에 있는 호스피스 병동의 19개 병상을 돌보는 의사가 2명,간호사가 8명이다.

의사인 정극규 박사와 메리 트레이시 수녀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호스피스 전문의다.

이들 외에 사회복지사,물리치료사,자원봉사자 등이 팀을 이뤄 함께 환자를 돌보므로 환자와 이들을 돌보는 이의 수가 거의 비슷하다.

현대식 건물에다 병원시설도 최고 수준이다.

1층에는 노인전문 요양원,2층에는 낮 동안 말기환자들을 돌보는 주간보호시설이 있고 3층이 호스피스병동인데 병실은 호텔처럼 아늑하다.

1인실,2인실,4인실로 된 병실은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고 바깥을 볼 수 있도록 테라스도 갖췄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에 따라 방을 선택할 뿐 병실료는 동일하다.

외래진료실과 아로마치료실,가족휴게실,치료실,상담실 등 다양한 부대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말기 환자는 이곳에서 다양한 도움을 받게 된다.

우선 환자를 괴롭히는 극심한 통증을 완화·조절해주고 환자가 가족과 함께 남은 삶을 편안하고 조화롭게 보내도록 도와준다.

또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도록 지원하고 환자가 사망한 뒤에는 남은 가족의 고통과 슬픔도 사별관리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해준다.

"일반 병원에서 암치료를 받느라 지치고 고통스러워하던 환자가 여기 오면 '하루라도 빨리 올 걸…'하고 후회해요.

작년에 왔던 43세의 남자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석 달간 치료받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다가 여기 와서 하루 만에 자기 발로 걸어다녔고,한 달 동안 매우 행복하게 살다가 성탄절 이브에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지요."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환자는 135명.손 카리타스 수녀가 환자들이 여기 와서 어떻게 생활하다 가는지를 사진첩으로 보여준다.

병원에선 환자들의 조그만 요구에도 최대한 귀를 기울이고 이것저것 하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환자가 담배를 피워도 여기서는 'OK'다.

환자의 가족을 초대해 잔치를 벌이기도 하고 날이 좋으면 환자와 의사,간호사 등이 함께 소풍도 간다.

전동침대에 누운 채 바깥으로 나와 바람을 쐬고 영화를 보기도 한다.

병동이 있는 3층 테라스는 환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음악회처럼 즐거운 행사가 수시로 열리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환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환자들이 요구하면 최대한 들어줍니다.

노래를 해달라면 수녀들까지 나서서 노래를 해주고 고스톱을 치자면 함께 하지요.

퍼즐이나 오목,장기도 두고 춤도 추고,인형극도 합니다.

정극규 박사님은 하루 종일 병실에서 환자들의 얘기를 들어주느라 바빠요.

어떻게 하면 환자가 더 즐겁게 지낼까 하는 것이 우리들의 관심사지요."

이처럼 극진한 보살핌을 받은 환자들은 밝고 편한 모습으로 삶을 마감한다.

하지만 이곳의 비용은 의외로 싸다.

통상 대학병원의 호스피스 병동 입원비가 월 500만원 안팎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드는 데 비해 여기서는 60만~100만원 정도면 된다.

후원자들의 도움과 수녀들의 헌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 수녀회는 창설 동기부터가 임종환자를 돕는 것이다.

가경자 메리 포터 수녀는 1877년 영국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마지막 순간까지 구원하는 일에 헌신하기 위해 수녀회를 창설했다.

수도회의 설립정신이 호스피스이므로 다른 수도회와 달리 호스피스 활동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한국에서는 1963년 진출한 이래 강릉에서 갈바리의원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며 국내 최초로 호스피스 활동을 도입했고,1987년부터는 서울에서도 모현호스피스라는 이름으로 가정간호 활동을 벌여왔다.

갈바리(골고다) 언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임종을 끝까지 지켰던 성모 마리아의 마음을 닮자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 '모현(母峴·성모의 언덕)'이다.

"호스피스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분이 보다 일찍 호스피스를 찾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일반 병원에서 치료할 가망이 없으면 호스피스 시설로 보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환자와 가족도 망설이다가 때를 놓치거든요.

환자가 죽음을 준비하며 삶을 정리하려면 적어도 한두 달은 있어야 하는데 이곳에 있는 기간이 보름가량에 불과해요."

박 스텔라 수녀는 "죽음도 준비하는 자에겐 축제가 된다"면서 "준비를 잘 해야 잘 죽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수녀들의 표정은 너무나 밝다.

손 카리타스 수녀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곳이라 우울할 것 같지만 세상 어느 곳보다 즐겁고 자유롭다"면서 "죽음 가까이에서 있다 보니 지극히 주관적이고 이기적이던 내가 많은 것에서 여유로움을 찾게 됐다"고 했다.

그렇다면,삶을 보다 여유롭고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죽음과 좀더 친해져야 하지 않을까.

포천=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