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盛日 < 서강대 경제대학원장 >

새해가 밝았다. 매년 맞이하는 새해지만 2007년 새해가 유난히 의미있게 느껴지는 건 올해에는 그간의 어수선함이 정리되고 좋은 흐름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금부터 20년 전인 1987년은 우리 현대사에 하나의 획을 그은 연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근대화를 앞세운 권위주의 정권을 청산하고 민주화시대를 연 해였기 때문이다. 1987년을 기준으로 나눈다면 그 이전 20년은 이른바 '근대화 20년'이라 할 수 있고 이후 현재까지는 '민주화 20년'이라 할 수 있다.

'근대화 20년'은 최단기간 내에 찢어지는 가난으로부터 역동적인 근대국가로 탈바꿈시킨 우리 역사에 남을 만한 기간이었다. 1967년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150달러 남짓으로 필리핀의 3분의 2에 불과했으며 메뚜기를 잡아 수출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1987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필리핀의 5배를 넘고 자동차를 수출하게 됐다. 이 기간 우리의 경제성장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이적(驚異的)인 성장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희생하며 얻어진 것이었기에 그렇게 자랑스럽게 느껴지지 못했다. 국민들은 경제적 성공에 걸맞은 민주주의를 원했고 결국 6·29 선언을 이끌어내며 권위주의 정권을 종식(終熄)시켰다.

'민주화 20년'은 여러 면에서 근대화 20년과 대비된다. 무엇보다 인권과 자유가 신장되었다. 적어도 길거리에서 전경이 고압적 자세로 젊은이들의 가방을 뒤지던 모습은 사라졌다. 대통령을 '물'이라 놀려도 잡혀가지 않는 언론의 자유가 생겼다.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여야 간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는 기록도 만들어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랄까. 지나친 자유는 무조건 소리지르면 해결된다는 식의 '떼법'을 만들었고,무리를 앞세운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는 또 다른 권력이 되어 책임지지 않는 권한을 행사했다. 정부는 질서를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포퓰리즘에 젖어 떼쓰면 들어주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렇게 욕구의 무절제한 분출,그리고 이를 달래는 무리한 법제도 변경 등으로 말미암아 경제시스템은 합리성과 효율성을 잃고 경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곧바로 성장동력의 약화로 이어지고,기업과 인재들은 답답한 국내보다 해외로 나가려 하고 있다. 그리고 저성장의 피해는 가장 약한 기업과 근로자들이 제일 먼저 보고 있다.

이제 민주화 시대도 20년이 됐다. 이쯤 해서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때다. 지난 20년이 '잃어버린 20년'은 아니었다. 인권과 자유의 신장을 이룬 긍정적 결과도 있었다. 다만 손실이 너무 컸다. 핸들을 너무 심하게 왼쪽으로 꺾는 바람에 최근 수년간은 찻길 아닌 밭두렁을 굴러왔다. 역사가 변증법적 발전을 한다면 이젠 정반(正反)을 넘어 합(合)의 시대로 나아가야 할 때다.

새로운 20년은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다만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룬 20년이 돼야겠다. 우선 국가 시스템으로서 질서체계가 잡히는 시대이길 바란다. 법의 문턱을 낮추어 사람들이 소리지를 필요없이 쉽게 자신의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改編)하고 그 대신 무조건 떼쓰는 방식은 단호하게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다음으로 재주와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 형평주의 사고에 기초한 각종 규제와 세제(稅制)를 고쳐 창의적 경제활동을 장려하고 그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부자가 기쁜 마음으로 뒤처진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고 봉사할 제도를 만드는 것이 좋다.

가장 변해야 할 것은 정부다. 그간 정부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횡포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방기(放棄)하는 무책임으로 비판받아 왔다. 이제는 공공질서를 세우는 일은 확실히 하되 민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은 확실히 멈추어야 한다. 마침 올해는 새 대통령을 뽑는 해다. 그래서 2007년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중요한 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