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奎載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움베르토 에코는 "시간의 종말은 다만 통과의례일 뿐"이라고 말했다. 죽은 달력을 내리고 새 달력을 걸면서 이 통과의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왜 1000년 밀레니엄을 말하며,왜 100년 세기를 구분하며,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말했을까. 사실 시간은 화살처럼 내달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들 인생은 그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시간의 매듭을 에코처럼 통과의례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한국인의 시간 단위에서 한 장의 달력이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던 탓도 크다.

김대중 정부로부터 10년이며 소위 87년 체제로부터 20년인 한국인의 시간 분절을 생각해본다. 민주화 원년으로부터, 그리고 개발연대의 사회구조가 괴멸되다시피했던 외환위기로부터의 시간들 말이다. 돌아보면 한국인에게 10년은 매우 특수한 생애주기요 경제사이클이 되어왔다. 혁명과 반혁명이 교차하고 냉엄한 경기변동이 경제를 파탄내고 또 건설해왔다. 지난 50년대 이후 매 10년 단위로 격렬한 사회변동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잔해를 남긴 채 쓸려 갔다. 짧은 호황은 급전직하하는 불황에 밀려났고 불순한 혁명은 폭력을 수반한 반혁명에 자리를 내주면서 시간들의 무덤들을 만들어 왔다. 해방후 첫 10년 단위였던 50년대의 호황은 전후 복구경기라고 불리면서 57년에 피크를 만들었지만 곧바로 높은 인플레와 깊은 불황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불렀던 경기침체는 폭력적 수습이라는 불청객도 끌고 왔다. 4·19와 5·16은 그렇게 혁명과 반혁명의 네임 텍을 주고받으며 시간의 바통을 넘겼다. 그러니 지금에 와서 '혁명'이라는 단어를 둘러싼 논란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월남 파병이 시작되고 우리가 처음으로 달러를 벌어보았던 60년대 역시 67년이 경기 꼭짓점이었다. 이 정점을 지나 날카로운 경기후퇴가 밀려왔을 때 이를 수습한 것은 70년대 초반의 3선 개헌이요 유신이었다. 중동에서 달러를 떼돈으로 벌기 시작했던 77,78년 역시 또 하나의 정점이었다.

"행복은 짧고 슬픔은 영원하다. 영원한 것이 진리라면 내게는 슬픔이 진리"라고 말했던 시인의 말처럼 불황은 언제나 우리 옆에 서 있었다. 정치 변동은 경기 진폭이 만들어내는 꼭같은 심도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렇게 10·26이 나고 12·12가 터지고 5·18 참사가 꼬리를 물었다. 정확히 10년의 위기 주기였다.

그리고 88올림픽과 함께 3저 호황과 민주화 투쟁의 불길이 동시에 타올랐다. 그 이후의 시간은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국난처럼 외환위기가 닥치고 IMF를 통해 강제 수습되는 구조조정의 시간들이 뒤를 이었다. 역시 밀고 되밀리는 작용 반작용이 10년씩을 갈라 가졌다. 참여정부 5년, 거슬러 올라 좌파정부 10년은 이미 실패를 증명해버린 그런 시간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 돌아보면 문민정부 역시 임기를 못채우고 부도처리됐다. 정치 리더십의 부재를 논하지만 실은 87년 이후 민주화의 과잉 탓도 클 것이다. 리더십 아닌 팔로어십(followership)의 문제라는 말도 된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리더십 아닌 팔로어십의 문제를 성난 야수처럼 비난하고 있지만 곡절이 어떻든 일면적 진실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 중산층의 도덕적 깊이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미 실패로 드러난 현재를 살아내기란 불확정의 미래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 어리석음으로 가득찬 시대를 참아내기란 폭압으로 점철된 시대를 견뎌내기 만큼이나 또한 쉽지 않다. 벽에 새 달력을 걸면서 절박하게 기도하는 심정이 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앞날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 단순한 수사학적 표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점(占)집은 올해도 성황이라지만, 칼 포퍼의 말처럼 점이란 틀리면 틀리기 때문에 볼 필요가 없고 맞으면 맞기 때문에 무의미한 것일 뿐이다. 올해 한국인들은 또 어떤 10년을 만들어 낼 것인지 실로 두려운 새해 아침이다. 모두의 가슴에 평화의 시간이 다시 시작될 수 있기만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