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인 박기성씨(45)는 최근 대출을 끼고 7억원짜리 아파트를 계약하기 위해 인근의 국내 시중은행 지점을 방문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따져볼 때 2억8000만원까지는 대출받을 수 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창구에서 돌아온 대답은 "주택담보대출이 중단됐으니 1월10일 이후에나 보자"는 것이었다.

그는 급한 마음에 길건너에 위치한 외국계 은행 지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요즘 주택담보대출 시장의 풍속도다.

총부채상환비율(DTI)과 LTV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11·15 부동산 대책 이후 국내 시중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영업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일선 창구는 '개점 휴업' 상태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본부에 대출 승인을 올리면 98%가 거부되고 있는데 무슨 주택담보대출 영업을 하겠냐"고 푸념을 늘어놨다.

대출 승인이 나는 2%는 의료비나 재산상의 손해를 입는 경우 등 긴급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는 "잔금 지급을 위해 꼭 대출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전체 신청자 중 70%에 이르는데 실수요자마저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안재형 우리은행 압구정동지점 계장은 "신규 상담이나 대출 문의 자체를 아예 받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영업을 사실상 접고 개인 신용대출에 발벗고 나선 상황이다.

국내 시중은행들이 사실상 주택담보대출 취급을 중단하자 대출수요는 규제를 받지 않는 외국계 은행으로 몰리고 있다.

SC 제일은행의 한 상무는 "외국계 은행은 창구지도와 같은 비공식적인 규제를 받지 않아 '풍선효과'의 혜택을 보고 있다"며 "이 달에만 1000억~1500억원 정도 대출수요가 외국계 은행으로 옮겨간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외국계 은행도 이 같은 특수가 오래 가진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창곤 SC제일은행 압구정역지점 부지점장은 "지금껏 외국계 은행은 정부 규제를 덜 받는 편이었지만 정부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잠실 지역의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일관성이 없어 고객과 부동산 모두 1월 이후까지 기다려보고 있다"며 "하지만 올해 11월과 12월에 대출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1월에도 또다시 대출이 묶이면 고객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1월 위기설'을 제기했다.

이처럼 부작용이 우려되자 정부 정책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투수(매도희망자)에게는 빨리 공(주택)을 던지라고 옐로카드(종부세 강화)를 주면서 공을 받는 포수(매수희망자)의 손발(대출길)은 꽁꽁 묶어놓고 있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지금과 같은 임시방편책이 아니라 실수요자 대출에 대한 장기대책을 내놓고 정상적인 거래는 활성화되도록 길을 열어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선화·안상미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