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열린 대문을 막 들어섰을 땐 본채 맞은편의 가건물이 무엇인지 몰랐다.

'기도실'이라는 작은 명패가 붙어 있긴 했지만 공사장의 임시 사무소 같은 컨테이너 건물이라 그냥 창고려니 했다.

오후 5시.모처럼의 외출 일정 때문에 앞당겨진 저녁기도를 위해 수녀들이 하나둘 컨테이너 건물로 들어간다.

서너평 남짓한 컨테이너 기도실은 겉모습과 달리 아늑한 황토방 같다.

황토색 톤의 벽과 바닥,정면 벽의 십자고상과 그 아래 감실,왼쪽 구석의 성모상과 그 위 '십자가의 길',기도틀 앞에 방석을 깔고 무릎을 꿇은 수녀들,그리고 낮게 울려퍼지는 기도 소리….겉모습과 달리 컨테이너 내부는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정갈하고 성스러운 공간이다.

서울 군자동 작은예수수녀회 본원.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에서 세종대 쪽으로 나와 대학 담장을 왼편에 끼고 골목길로 접어들어 50m쯤 들어가면 아담한 2층짜리 단독주택 정문에 수녀회 간판이 걸려있다.

마당의 목련나무 아래에서 한복을 곱게 입은 성모자상에 예를 표한 뒤 현관에 들어서자 검은색 수도복을 입은 정미영 예수데레사 수녀가 환한 미소로 맞아준다.

화가이기도 한 본원장 윤석인 수녀는 매달 그려주는 월간 영성잡지 '둘로'의 표지그림 마감이 임박해 자신이 대신 수녀회에 관해 설명하게 됐다며 양해를 구하는 정 수녀의 발음이 어눌하고 표정도 자주 일그러진다.

올해로 수녀회에 들어온 지 11년째인 정 수녀는 장애인이다.

본원장 윤석인 수녀 역시 어린 시절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침대형 휠체어에서 24시간을 보내야 하는 장애인이다.

1992년 박성구 신부가 창설한 작은예수수녀회는 이처럼 장애인도 수도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수도회다.

"우리 수녀회는 창립 동기부터 타 수도회와는 달라요.

장애인만의 수도 공동체는 있지만 장애인과 일반인이 함께 하는 수도회는 없는데 그런 점에서 여기는 세계 유일의 수녀회입니다.

장애인들만 떨어져서 살게 되면 사회와 유리되는 데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지만 저희는 함께 살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라고 할 수 있어요."

작은예수수녀회의 현재 회원은 27명.이 중 3분의 1가량이 장애인이고,본원의 경우 13명의 수녀 가운데 4명이 장애인이다.

장애인이 수도생활을 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대단한' 일이다.

불교든 기독교든 장애인의 출가 혹은 수도생활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신부는 "(눈에) 보이는 장애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우리의 참모습"이라며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수도하는 공동체를 창설했다.

"박 신부님은 2000년 전 예수님의 모습을 현재,이 시대의 삶 안에서 표현하기 위해 수녀회와 수도회를 동시에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 구원을 위해 천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인간으로 와서 가장 낮은 이들과 똑같이 생활하셨듯이 장애인 식구들을 예수님으로 모시고 내 안에서 예수님을 이루자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므로 그 예수님을 찾아가 대접하라는 것이 우리 수녀회의 정신입니다."

작은예수수녀회는 그래서 현재 전국 10곳에서 소공동체를 이뤄 산다.

서울 구의동·화양동·불광동,성남,전주,대구,옥(거제도)포,제주에선 장애인 소공동체를,벽제와 거제도 옥포에선 노인소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브라질 미국 중국에서도 행려인 무료급식과 장애인 복지,노인공동체 운영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장애인 소공동체에서는 수녀 1명이 여성 장애인 9~15명과 함께 생활한다.

정 수녀 역시 대구 등지에서 소공동체를 운영하다 지금은 본원에서 성소(수녀회 입회 희망자) 및 수련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소공동체에선 모두가 한식구예요.

수녀는 거기서 엄마도 되고 친구도 되고 연세 드신 분들한테는 자식이 돼서 생활하지요.

장애인 식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똑같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살아요.

장애인들만 사는 곳에선 장 보러 가기,심부름 하기 등 사회적응 훈련프로그램이 있지만 우리는 늘 한식구로 살면서 사회 적응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게 필요 없지요."

정 수녀는 "장애인 식구는 20세 이상의 성인만 받아들인다"면서 "다 이유가 있다"고 했다.

어릴 땐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없는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하지만 스무살을 넘으면 장애인은 집안에서 더욱 소외된다.

형제들은 독립하고 부모는 점차 노쇠하는 데다 장애인은 경제력마저 없기 때문이다.

정 수녀는 "소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은 시집오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깔깔 웃었다.

정 수녀는 어찌나 잘 웃고 웃기는지 취재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도무지 장애의 그림자라곤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수녀회에선 장애인이라고 절대 안 봐줘요.

일반인과 동등하게 서야 한다는 게 박 신부님의 교육방침이거든요.

그러니 장애인 수녀들은 일반인보다 10배는 더 노력하고 일해야 돼요.

그만큼 '강력한' 수련기를 보내야 하고요.

그래서 입회를 받을 땐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해야 하므로 엄격한 기준을 세워서 선택합니다.

제가 '칼 있으마(입회 여부를 결정하는 칼을 휘두른다는 뜻)'를 좀 발휘하죠,호호."

성치 않은 몸으로 왜 이렇게 고생하며 사느냐고 묻자 그는 "병원에서 다들 죽는다고 했을 정도로 아팠다가 다시 살아났으니 내 삶은 내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나만 위해서 산다면 되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진짜 어려운 것은 몸의 고단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버리고 비워서 그 자리에 하느님의 가치를 채우는 것"이라며 "이 삶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작은예수수녀회는 내년 4월 또하나의 커다란 일에 도전한다.

경기도 가평군 하면에 중증여성장애인 요양시설인 '가평 작은예수의 집'을 짓기로 한 것.장애인들 중에서도 가장 손길이 필요한 중증 장애인의 공동체를 이루려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