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전 대법관이 21일 앞으로 6년간 헌법재판소를 진두지휘할 새 사령탑으로 낙점받음에 따라 그의 성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효숙 파동'을 잠재우고 종합부동산세법과 개정 사립학교법의 위헌 여부 등 쌓인 현안을 풀어내 '국가 4부'로서 헌재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가 그의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지명자는 이날 지명 직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걱정이 많이 앞선다"며 "이번 사태로 크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전효숙 전 후보자에게 우선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지명자는 보수나 진보 어느 한 쪽으로 분류하기 어려울 정도로 판결의 스펙트럼이 넓다.

노조의 불법 시위에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는가 하면 소수자 배려와 환경 인권 등과 관련해서도 소신 판결을 적지 않게 내놓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중도' 성향에 가깝다. 이 지명자는 "개인이나 예의범절 등에서는 보수적이지만 사회제도 개선에서는 감히 진보적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대법관 퇴임 직전인 지난 7월 철도노조에 거액의 손해배상을 물은 판결은 이 지명자의 '노사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3년 철도청의 민영화에 반대해 철도노조가 벌인 파업에 대해 그는 주심을 맡아 "노조의 요구가 근로조건 관련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으나 주로 정부 정책사항에 관한 것이었고,찬반투표 없이 파업에 돌입한 만큼 정당성이 없는 불법 파업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며 24억4000여만원을 배상토록 했다. 그는 또 "대정부 투쟁을 목적으로 한 노조의 시위는 정당성이 없다"는 등 불법 시위에 대해선 단호하게 반대 입장 편에 섰다.

"분식회계 법인이라도 과다하게 부과한 세금은 돌려줘야 한다"는 지난 1월 판결도 주목을 받았다. '실질과세 원칙'이란 주제로 논문까지 쓴 그는 대우전자㈜가 분식회계를 하느라 과다 납부한 세금을 돌려 달라며 낸 소송에서 "신의원칙이 실질과세 원칙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며 법인세 233억여원을 돌려주라고 판시했다.

'개명(改名) 신청사건' 결정과 '양심적 병역거부' 소수의견은 후배판사들 사이에서는 '파격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지명자는 지난해 11월 구모씨가 "이름을 바꿔 달라"며 낸 재항고 사건에서 "개명을 허가할 때는 '사회적 혼란'보다 '개인의 주관적 의사'가 중시돼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2004년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다수의 유죄 의견에 맞서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가 충돌할 경우 양심의 자유가 좀 더 존중되고 보장돼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그는 "종교적 양심의 명령에 따른 피고인에게는 실정 병역법에 합치하는 적법한 행위를 할 가능성을 기대하기 매우 어렵다고 보인다"며 국가의 형벌권이 한 발 양보할 것을 제안했다.

지난 3월 새만금사업 판결에서는 '간척사업이 계속 진행돼야 한다'는 다수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정부가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만족하지 말고 환경 친화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는 보충의견으로,소송에 진 환경단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세심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시절인 1997년 사법연수원 25기 수료생 3명이 '학생운동 경력을 이유로 검사 임용에 탈락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임용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이유 없다"며 기각해 재야의 비난을 받은 경험이 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