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창립기념품 납품비리로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은 12대 현대자동차 노조 집행부(위원장 박유기)가 13일 총사퇴키로 했다.

박유기 위원장은 이날 노조소식지를 통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최소한 책임지는 방법은 조기선거를 통해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사퇴할 뜻을 시사했다.

박 위원장은 임기 1년을 남겨두고 있다.

노조는 이에 따라 이날 확대운영위를 열고 산업별 금속노조 현대차 지회장으로 출범할 차기 위원장 선거를 내년 1월 중 개최키로 결정했다.

박 위원장이 사퇴 불가에서 중도 사퇴로 급선회한 것은 현장 조합원들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루 전만 해도 박 위원장은 내년 초 출범하는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전환 일정 등을 감안해 사퇴 불가 입장을 견지했다.

이에 대해 현장 노동조직은 물론 일반 노조원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13일 조기 선거를 실시하겠다며 총사퇴 의사를 밝혔다.

19년 현대차 노조 역사상 일반 노조원과 현장 노조 조직들이 이처럼 일관되게 노조 집행부의 도덕성을 비난하며 조기 총사퇴를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집행부 사태는 지난 7월25일 노조 창립일을 맞아 기념품 납품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일부 의혹이 제기되고 도덕성 시비가 불거지면서 예견됐다.

노조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조합원 정서를 외면한 채 미온적으로 대처하다 경찰 수사로 노조 총무실장이 구속되는 등 사태가 확산된 뒤에야 진상 조사에 나서는 바람에 현장 조합원들의 불신과 분노를 키웠다.

여기에 침묵을 지켜왔던 현장노조 조직들이 가세하면서 총사퇴 여론으로 번져 결국 박 위원장은 현장 조합원들의 압력에 밀려 물러나야 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번 사태로 현대차 노조는 도덕성에 씻을 수 없는 치명타를 입게 돼 민주노총 핵심 전위대로서의 쌓아온 강성 이미지가 크게 실추될 전망이다.

또 1987년 노조가 생긴 이래 한 번을 제외하고 올해까지 19년간 연속 파업을 벌인 현대차 노조에 어떤 식으로든 개혁과 변화를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산별노조 현대차 지회장 선거를 앞두고 10여개에 이르는 현대차 내부의 현장 노동조직들 간 노선 경쟁도 불붙을 전망이다.

노사 상생을 통해 일자리 창출을 지향하는 뉴라이트 신노동운동연합도 이 경쟁에 참여할 태세다.

조합원들이 기존 강성 노조의 투쟁방식에 심한 염증을 느끼고 있어 이번 사태는 경우에 따라 새로운 노사 상생의 틀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