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정주영,이병철처럼 되지 말란 법이 있나"라며 호기롭게 포부를 밝히던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44).그의 성공 신화가 이대로 막을 내리는가.

삼성 현대처럼 큰 그룹을 일구고 나서 '부회장' 딱지를 떼고 당당하게 "회장님" 소리 듣겠다던 그의 꿈을 여기서 접어야 하는가.

박병엽 부회장은 15년 만에 중소 무선호출기(삐삐) 제조업체를 매출 3조원대의 내수 2위,글로벌 7위의 대형 휴대폰 생산업체로 키운 '기업가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남들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는 사업도 '1%의 가능성을 보고' 공격경영을 표방하며 돌진했다.

그 결과 팬택계열은 1980년대 이후 창업한 제조업체 중 유일한 조단위 매출을 기록한 업체로 한국기업사를 새로 썼다.

맥슨전자 샐러리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박 부회장은 1991년 맥슨전자를 그만두고 전세금을 빼 자본금 4000만원,직원 6명으로 무선호출기 생산업체 팬택을 설립했다.

특유의 친화력과 사업 감각으로 시작한 삐삐 사업은 호황을 맞았다.

박 부회장은 곧바로 '포스트 삐삐'를 준비해 1997년 휴대폰 제조업체로 탈바꿈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미국 모토로라에 제품을 납품하며 시작한 휴대폰 사업은 5년 만인 2002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박 부회장은 '3대가 놀고 먹을' 돈을 번 시점에 현대큐리텔을 인수하는 도박을 감행했다.

규모의 경제와 내수시장 참여만이 살길이라고 판단해 2001년 12월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먹는,자신의 '전부'를 건 승부를 결정한 것.그는 적자기업 현대큐리텔을 인수해 1년 만에 흑자기업으로 반전시키며 또다시 신화를 이어갔다.

이후에도 박 부회장의 진군은 멈추지 않고 연평균 66%의 경이적인 성장세를 유지해갔다.

이 같은 탄탄대로의 배경에는 박 부회장의 동물적인 판단력과 불도저 같은 추진력,그리고 처음 만난 사람을 순식간에 친구로 만드는 특유의 친화력이 한몫했다.

박 부회장의 성공 신화는 지난해 5월 '스카이' 휴대폰으로 널리 알려진 SK텔레텍을 전격 인수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이 결정으로 팬택계열은 내수시장에서 LG전자를 제치고 한때 휴대폰 2위 업체로 우뚝 섰다.

박 부회장의 용단은 이번에도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메이저 업체와의 정면승부만이 살길이라고 본 박 부회장은 곧바로 공격적인 경영을 이어갔다.

해외 시장에서 자체 브랜드로 사업하기 위해 2000억원 이상의 마케팅 비용을 투입했고 미국시장에서도 자체 브랜드로 정면도전을 감행했다.

한국업체 최초로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시장으로도 밀고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운이 나빴다.

국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행한 공격경영은 대형 업체들의 반격을 가져왔다.

모토로라는 슬림폰 '레이저'로 돌풍을 일으켰다.

세계시장이 노키아 등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에서 자체 브랜드 전략은 쉽사리 성과가 나지 않았다.

합병 시너지 효과도 작았고 내수는 부진에 빠졌다.

박 부회장은 11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마쓰시타 도시바 산요 등 내로라하는 업체들 다 제쳤고,'사스(급성중증호흡기질환) 충격'도 피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16년 동안 경영을 하면서 처음 실패경영을 했다"고 시인하면서 "내 모든 걸 버리는 한이 있어도 기업은 꼭 살려야 한다"고 간곡히 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 박병엽 부회장 약력 ]

○1962년:전북 정읍 생
○중동고,호서대 경영학과 졸업
○1987~1991년:맥슨전자 근무
○1991년:팬택 설립
○1997년:김포사옥 완공
○2000년:팬택계열 부회장
○2001년:현대큐리텔 인수
○2003년:금탑산업훈장 수상
○2005년:SK텔레텍 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