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고속도로로 72km. LG전자의 복합가전 공장이 위치한 루자 지역의 초겨울 기온은 모스크바 도심보다 더 차가웠다.

그러나 찬 공기의 유입을 막는 '에어 커튼'을 뚫고 들어간 공장 내부는 뜨거운 작업 열기 때문인지 계절을 잊은 모습이다.

훤칠한 키의 러시아 청년들이 LG 로고가 부착된 평면TV와 세탁기,냉장고를 만드는 모습도 활기찼다.

안성덕 LG전자 CIS지역대표(상무)는 "전기,용수 등 인프라가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고생이지만 영하 20도의 기후 속에서도 공장 완공에 매달렸던 지난 겨울을 생각하면 이 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1억4000만 인구의 러시아 시장을 LG가 선점했다는 흐뭇함에 힘든 것도 잊었다는 말투다.

LG전자 루자 공장은 글로벌 전자업체 중 처음으로 러시아에 설립한 복합 가전공장이다.

1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지난 9월 완공됐다.

안 상무는 "2004년 구본무 회장이 '수천만달러가 깨져도 상관없다.

지금이 투자 타이밍이다'라고 말해 바로 법인을 만들고 공장 설립에 돌입했다"며 "최근 들어 빠르게 투명해지고 있는 러시아 시장을 보면 최적의 타이밍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막대한 오일달러의 유입으로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러시아이지만 LG전자 외에는 규모 있는 공장을 지은 회사가 별로 없다.

그만큼 예측이 어려운 시장이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의 관료주의적 태도,빗물마저 정수 처리해야 하는 까다로운 규제,열악한 인프라 등 난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핀란드 보세창고를 통한 '회색 통관(관세를 줄이기 위한 편법 수출)'이 투자를 지연시킨 가장 큰 요인이었죠.러시아 수입상들과 관계만 잘 맺으면 낮은 관세로도 통관할 수 있기 때문에 돈을 들여 공장을 세울 필요가 없었던 거죠.하지만 WTO가입을 앞둔 러시아 정부가 지난 여름부터 회색 통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한 만큼 이미 본격 가동을 시작한 LG전자 공장이 러시아 시장을 선점하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LG전자는 러시아 시장이 투명해지는 속도에 맞춰 프리미엄 가전 제품을 위주로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소득은 많지 않지만 소비 지향적인 러시아 소비자들의 특성에 맞춘 것.올해 2억달러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모스크바=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