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전효숙 헌재소장 카드를 접었다.

전 전 재판관은 헌재소장 후보자의 지위는 물론 헌재 재판관에서도 물러났다.

지난 8월16일 전효숙 당시 재판관을 소장 후보로 지명한 지 100여일 만이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27일 저녁 긴급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면서 철회는 본인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노 대통령의 여·야·정 정치협상 회의 카드를 살리기 위한 '희생 카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나라당은 "지명 철회와 정치협상 회의와는 무관하다"면서 이재정 통일.송민순 외교장관 후보자, 정연주 KBS사장 인사의 전면 철회를 주장하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대의 살리기 위한 희생 카드(?)

청와대의 전 후보자 지명 철회는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청와대는 "여야가 정치력을 발휘해 표결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에 변화가 없다"며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전날 노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정 정치협상 회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부한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청와대는 직접적인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사법·국방 개혁법안과 비정규직 법안 등 장기간 표류하고 있는 개혁 입법과 내년도 예산안 등 민생을 살리기 위한 노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윤 대변인은 "전 후보자에 대한 지명 철회와 정치협상 제안은 무관하다"면서도 "회의를 제의했던 취지와 정신은 유효하다"고 강조,한나라당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일부에서는 그러나 '전효숙 카드'의 철회는 정치협상 회의를 제안할 때 이미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사실상 '정치적 사망 선고' 상태였던 전 후보자의 퇴로 확보 차원에서 정치협상 을 제의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예상대로 한나라당이 이를 거부하자 청와대가 계획했던 대로 지명 철회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침울한 청와대,레임덕 우려

이 과정에서 청와대로서도 대통령의 정치적 권위가 치명적으로 약화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3개월여를 끌어왔던 전 후보자 사태가 사실상 청와대의 '백기 투항'으로 종결돼 노 대통령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한 중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던 인사권마저 무기력해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돼 레임 덕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청와대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운영 정상화를 위한 노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은 평가돼야 한다"며 "야당도 정치적 득실에만 치중하지 말고 대국적 차원에서 국회 운영의 정상화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코드 인사도 철회해야

기선을 잡은 한나라당은 정치 공세의 고삐를 더욱 바짝 당기고 있다.

김형오 원내 대표는 "만시지탄이지만 당연한 일"이라며 "진작 (철회)했어야 하는 것을 청와대가 사람 하나만 어렵게 만들고 명예도 추락시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가 제안한 정치협상 회의 역시 성사가 힘들 전망이다.

김 원내대표는 정치협상 회의에 대해 "그것은 안 된다"며 일축한 뒤 "청와대는 앞으로 이재정 통일장관 내정자,정연주 KBS 사장 문제 등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경원 대변인도 "노 대통령이 앞으로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 다른 인사 문제를 푼다 해도 법안 등 그 다음의 문제는 국회에서 논의될 문제"라고 말했다.

홍영식·이심기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