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안 등을 둘러싼 정국 교착상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가 정국현안을 타개하기 위해 '여·야·정 정치협상 회의'를 제의한 데 대해 한나라당은 27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여당 일각에선 청와대가 사전 협의 없이 정치협상 회의 카드를 꺼낸 데 대해 반발하고 나서 당·청 갈등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이 풀어라"=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 및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처리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면 순식간에 물꼬가 트이고,나머지는 국회가 알아서 하면 되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정치협상회의가)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강 대표는 전 후보 뿐만 아니라 이재정 통일·송민순 외교통상부장관 후보자,KBS 정연주 사장 문제 등을 양보하면 국회에 계류된 쟁점법안은 단숨에 협상이 가능하다고 압박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헌재 소장,외교·통일장관 등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는 '성의'를 보이면 그 다음 문제는 청와대의 개입 없이도 여야가 자연스럽게 풀어 나갈 수 있다는 논리다.

한나라당으로선 이미 '사석(死石)'이 됐다고 보는 '전효숙 카드'에 대해 청와대가 한 발 물러나는 대신 다른 현안을 양보하라고 요구할 경우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도 협상 거부의 주요 이유로 분석된다.

열린우리당은 청와대의 제안을 수용할 것을 한나라당에 촉구했으나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정기국회에서 각종 법안 처리를 마무리짓고 당 진로 모색에 나선다는 시간표를 갖고 있던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전효숙건'이 해결되지 못한다면 한 발도 움직일 수 없는 처지다.

김근태 의장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 간 정례회동을 주장하면서 "앞으로 정부가 방향을 정해놓고 추진하는 당·정 협의에 응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이 같은 기류를 말해준다.

○곤혹스런 청와대=청와대는 정치협상 제안 수용을 거듭 촉구했다.

이병완 비서실장은 정치협상을 거부한 한나라당 강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럼에도 전 후보자 문제에 대해 일단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태도를 되풀이했다.

'전효숙 카드 포기' 관측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윤태영 대변인은 "달라진 것이 없으며,국회 상황을 지켜본다는 데서 더 이상 나간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달라진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 실장이 지난 26일 정치협상 제안을 하면서 전 후보 인준문제도 "협상에서 다뤄질 수 있다"고 밝힌 게 계기가 됐다.

전 후보 문제를 협상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한나라당의 요구 여하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전 후보 후임자 물색에 들어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여권에선 이강국·손지열 전 대법관,최병모 변호사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정치협상에 대해 한나라당이 거부함에 따라 청와대는 곤혹스럽게 됐다.

'전효숙 카드' 포기 입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제 적절한 모양새 찾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홍영식·이심기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