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포퓰리즘' 퇴조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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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대륙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사그라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 "올해 초까지만 해도 중남미를 휩쓸 것만 같았던 포퓰리즘적 정치 기류가 최근 들어 퇴조하고 있다"며 "물론 아직도 자유 시장 개혁에 대한 실망감이 이 지역에 남아 있긴 하지만 유권자들은 이제 급격한 변화보다는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는 대권 후보를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중남미 지역의 인플레이션이 지난 10여년 동안 약화되고 경제가 점차 안정되면서 노동자들은 경제 성장의 혜택을 알게 됐고 이러한 기류 속에서 안정을 선호하는 쪽으로 성향이 바뀌게 됐다는 것.
오는 26일 대선이 실시되는 에콰도르에서 무소속 극좌파에 '반미' 성향의 라파엘 코레아 후보가 기존에 내세웠던 경제 개혁과 헌법 재개정과 같은 극단적인 주장을 철회하고 산업 발전,고용 창출,주택 문제 해결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이러한 현상과 무관치 않다.
볼리비아에선 민족주의 좌파 성향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 산업 국유화,토지 개혁 등이 보수파 의원들의 제동으로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다.
이달 니카라과에선 전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NL)의 지도자였던 다니엘 오르테가가 혁명의 이미지를 탈피,안정과 화해를 내세우며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는 선거 기간 중 '레닌 경제학'을 내던지고 존 레넌의 반전 노래 '평화에 기회를 줘요(Give Peace a Chance)'를 사용했었다.
이 밖에도 올 6월 페루에선 한때 포퓰리스트였던 알란 가르시아가 자신의 이념을 바꾸며 선거 공약으로 자유 무역과 시장 개방을 내세워 재선에 성공했고,7월 멕시코에서도 펠리페 칼데론이 포퓰리스트이자 전 멕시코시티 시장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멕시코 대선 당시 로페스 후보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북부 지역 도시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며 정권 획득에 실패했다.
이제 남미 지역의 거의 유일한 포퓰리즘 정부로 남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도 점점 삐걱거리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전 농업부 장관인 에프렌 안드라데스 안데스대학 교수는 "올 초만 해도 달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을 (차베스 정부가) 아직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포퓰리즘의 퇴조를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중남미의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이 지역의 극심한 빈부 격차와 여러 경제적 불평등 요소는 포퓰리즘이 언제라도 다시 부활할 가능성을 남겨 놓고 있다고 WSJ는 진단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IAD 연구소의 마이클 시프터 부회장은 "중남미 유권자들이 안정을 선호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남미에서 포퓰리즘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큰 실수"라며 "여전히 이 지역엔 대중영합주의가 싹틀 수 있는 분노와 좌절의 감정이 많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