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급준비율을 높이기로 결정한 것은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한 긴급 조치로 해석된다.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는 자금을 차단하기 위해 금리인상 처방을 내리기 보다는 시중은행들의 돈줄을 직접 죄는 쪽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지급준비율이 높아지면 은행들이 대출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중의 자금이 급격히 축소될 수밖에 없어 부동산 시장의 과잉유동성을 해소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자금줄을 조이면 시중의 금리도 덩달아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금리인상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과잉유동성 직접 흡수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 이후 콜금리를 계속 올렸는 데도 시중의 유동성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이와 관련,"금리를 인상한다고 해서 시중의 유동성이 곧바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금리인상의 한계를 털어놓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에서 측정하는 광의유동성(L)은 지난해 12월 1655조원에서 올해 8월 말 1754조원으로 늘어났다.

콜금리가 지난해 10월 3.25%에서 올해 8월 4.5%로 올랐는 데도 시중의 자금은 계속 늘어났다는 얘기다.

이 같은 시중의 과잉유동성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집값상승을 부추겼다는 것이 재정경제부와 한은의 공통된 판단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은은 금리인상을 검토해왔으나 재정경제부는 거시경제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금리인상보다는 대출을 직접 규제하거나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방향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급준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의결하기로 결론을 낸 것은 '금리인상 없이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나온 것이다.

현재 지급준비율 5%를 적용받는 예금은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요구불예금으로 9월 말 기준 잔액이 69조8134억원이며,2%의 지급준비율을 적용받는 정기예금 정기적금 등의 저축성예금은 508조6064억원이다.

잔액 기준으로 보면 요구불예금이 저축성예금보다 훨씬 적지만 요구불예금 회전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지준율 인상 효과는 훨씬 크다.

요구불예금의 회전율은 월평균 23회에 달한다.

◆시중금리 상승 불가피

지급준비율이 늘어나면 우선 시중자금이 줄어들게 된다.

예컨대 100만원의 예금을 받은 은행이 10%의 지급준비율을 맞추려면 90만원밖에 대출할 수 없다.

종전에는 95만원을 대출해줬는데 5만원이 줄어든 만큼 시중의 자금은 감소한다.

대출된 돈이 다시 은행으로 흘러들어온 뒤 다시 대출되는 돈 역시 10%의 지준이 적용되기 때문에 시중 자금은 연쇄적으로 축소된다.

두 번째 문제는 은행들의 비용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행법 55조에 따르면 지급준비금으로 쌓아둔 돈에 대해 이자를 지급할 수 있도록 규정했으나 이자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은행으로서는 예금이자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은행의 비용이 늘어나는 만큼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요인이 발생하게 된다.

시중의 자금이 줄어들면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대출받기가 어려워지고,이에 따라 시장에서 형성되는 금리도 중장기적으로는 오를 수밖에 없다.

한은이 콜금리를 인상하지 않더라도 금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은 관계자는 "콜금리를 인상하는 것이나 지급준비율을 상향조정해 통화량을 줄이는 것 모두 시중 금리를 올리려는 것"이라며 "이번에 지급준비율을 조정하는 것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콜금리로 통화량을 조절하겠다는 원칙에는 다소 어긋나는 조치"라고 말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



'지급준비율'이란

지급준비율이란 금융사가 예금총액의 일정 비율을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현금준비 비율을 의미한다.

이 현금에는 해당 금융사의 현금뿐만 아니라 타은행에의 요구불예금,콜론 및 중앙은행 예치금도 포함된다.

중앙은행 예치금은 법정준비금이라고 하고 이 법정준비금의 적립비율을 지급준비율이라고 한다.

지급준비금은 각 금융사가 언제든지 예금자의 지급요구에 응할 수 있도록 예금총액의 일정비율을 보유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은행에서 지급준비율을 높인다는 것은 한국은행이 현금을 그만큼 더 확보하는 것이다.

새로 화폐를 찍어내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 등 금융사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예치금을 늘리는 것이다.

한국은행에서 이렇게 통화를 회수하게 되면 시중에는 통화량이 감소,화폐가 희귀해진다.

화폐가 희귀해지면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고 자연히 금리인상 효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지급준비율을 3%에서 5%로 높이면 본원통화 대비 시중 유동성이 단순히 2%가량 감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금이 금융사에 순환하며 계속 통화량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