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9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을 끝으로 한반도 주변 4강 정상들과의 숨가쁜 정상외교를 마쳤다.

이번 연쇄 정상회담에서의 가장 큰 성과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북핵 폐기에 따른 상응 조치를 도출,회담 진전을 위한 모멘텀을 마련한 것이다.

이번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또 아·태 자유무역지대(FTAAP)를 장기 비전으로 추진키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면서 APEC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외교적 노력도 병행됐다.

○美,한국전 공식종료 선언할 수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대북 상응 조치의 골자는 이미 지난해 합의된 9·19 공동성명에 다 들어있다.

에너지를 포함한 경제지원과 다자 안전보장,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과 관련한 구체적 이행조치들까지 모두 마련된 상태다.

한·미 정상이 새삼스럽게 이를 강조한 것은 6자회담에 복귀할 북한에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의미다.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노 대통령과 가진 공동 언론 브리핑에서 이틀 전 싱가포르 국립대에서 한 연설을 다시 인용,"만약 북한이 평화적인 길을 택한다면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당사국은 북한 주민들을 위해 안보를 보장하는 한편 경제적 지원과 다른 혜택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북핵 폐기에 따른 상응 조치 내용에 대해 구체적이고 심도 깊은 내용이 논의됐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북·미 관계 정상화와 관련,"한국전쟁의 공식 종료선언도 포함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전 종료 선언은 북·미 교전상태를 청산하고 평화 협정을 본격 논의하게 된다는 뜻이다.

북한의 체제 보장을 약속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북한의 핵포기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 쉽게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미국이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목록 중에는 한국전의 종료를 선언하고 경제 협력과 문화,교육 등 분야에서의 유대를 강화하는 게 포함돼 있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특히 미·일은 18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에 핵사찰 수용 등 비핵화를 위한 실천을 요구키로 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제 6자 회담장의 세팅은 모두 끝났으며 북측에 제공할 메뉴판까지 마련했다"며 "남은 것은 북한이 핵포기에 대한 실천적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APEC에서 FTAAP

이번 14차 APEC 정상회의는 자유무역 증진을 위한 21개 회원국의 강력한 의지와 함께 APEC의 조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집중 논의됐다.

노 대통령은 "올 상반기까지 APEC 회원국 간 21개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으며 25개의 교섭이 진행 중"이라며 "APEC은 FTA를 다자무역 체제와 상호보완되는 정책 수단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회원국들은 또 APEC의 장기비전으로 FTAAP를 설정한다는 데 의견 접근을 이뤘으며 일부 회원국은 APEC에 사무총장제를 도입,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업의 추진체를 확보토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노이(베트남)=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