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한·미 외교마찰까지 부른 '코리아 게이트'의 주역 박동선씨. 박씨는 지난 1월 미 사법당국에 또다시 체포돼 10개월째 구속상태다.

로비스트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이라크 정부를 위해 로비했다는 혐의다.

박씨는 최근 옥중에서 지인을 만나 "나는 미국의 유엔 길들이기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1996년 당시 부르토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유엔이 석유·식량 프로그램으로 이라크를 돕도록 한 게 괘씸죄로 걸렸다는 설명이다.

박씨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로비스트로서의 그의 영향력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로비스트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많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에서는 상원 하원에 이어 '제3원(院)'으로 불릴 정도다.

워싱턴의 로비업체 집결지인 'K스트리트'에 등록된 로비스트만 3만5000명 수준.이들이 벌어들이는 돈만 해도 수십조원대에 달하는 당당한 '산업'이다.

국내에서도 초대 미스코리아 진 출신으로 프랑스 고속철도 테제베를 도입한 강귀희씨,국방부의 정찰기 도입 사업인 백두사업에 개입했던 린다 김씨(본명 김귀옥) 등의 활약으로 로비스트들의 '힘'이 일부나마 알려진 바 있다.

최근 들어선 김성호 법무장관이 '로비스트법'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국가청렴위원회도 거들고 나서면서 로비스트 양성화 분위기가 본격 무르익고 있다.

법무부는 내년 초 로비스트법안 발의를 목표로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민주당 이승희 의원과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은 로비스트법을 의원입법으로 발의한 상태다.

무소속 정몽준 의원은 로비스트 양성화와는 조금 다른 취지이나 외국 국가나 기업을 대리하는 '외국대리인'을 등록토록 하는 법안을 2년 전에 제출했다.

재계도 기본적으로 로비스트 양성화에 찬성하고 있다.

법안이 도입되면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기업의 입장을 대변할 로비스트를 고용해 의혹을 받지 않고 정책 건의를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이승철 전경련 상무는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대정부·대의회 조직을 갖추지 못하는 중소기업에 로비스트가 더욱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돈을 매개로 한 불법적인 로비행태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공개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 또한 국가의 주요 정책결정이 로비의 희생물로 전락하거나 자금력을 동원할 수 있는 특정집단의 이익만이 관철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오리건 주(州)정부의 로비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김진원씨는 "로비스트는 전문지식을 갖고 정책적 관심을 대변하는 것이고 브로커는 개인의 사적인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1997년 하이닉스(옛 현대전자) 공장을 오리건주에 유치한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로비스트가 법제화됐다면 바다이야기 같은 경우 국회의원과 공무원 등이 누구를 만났는지 백일하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며 "정상적인 로비활동을 아예 금지하고 있는 현실이 오히려 뇌물이 오가는 등 음성로비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김병일·김동욱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