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F와 사모펀드에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제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1990년대 이후 급팽창하며 국제금융시장의 주역으로 부상한지 오래다.

외환위기 이후 제일은행(뉴브리지캐피탈) 한미은행(칼라일) 외환은행(론스타) 등을 사들인 주역도 전부 외국 PEF들이다.

국내에선 상반기만 하더라도 PEF는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최근 부쩍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외국계 PEF가 시장을 주도하던데서 벗어나 토종 PEF의 활약이 점차 돋보이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해당 펀드들은 "전문지식을 가진 펀드가 경영에 참여할 경우 기업 가치를 높일 가능성이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업 입장은 이와 정반대다.

단기 차익을 추구하는 펀드가 경영에 과도하게 참여하는 것은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고 경영의 자율성을 해침으로써 장기적으로 마이너스라는 주장이다.

◆모든 딜은 PEF로 통한다

통상 '사모투자펀드'로 불리는 PEF는 넘쳐나는 시중 유동성을 기업과 금융 구조조정에 활용해 선순환을 불러오고,자본시장을 활성화해 동북아 금융허브로 도약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에 빼앗기다시피 한 '금융주권'을 되찾아보겠다는 정책의지도 깔려 있는 게 사실이다.

경험미숙과 이해부족으로 제도도입 이후 부진을 면치 못했던 PEF는 하반기들어 대규모 딜에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인수가격이 7조원을 넘어 '사상최대의 딜'로 불렸던 지난 8월의 LG카드 인수전은 급성장중인 PEF의 면모를 보여줬다.

당시 유력 후보였던 신한지주와 하나금융에 각각 국민연금과 MBK파트너스가 PEF 형태의 재무적투자자로 참여하며 인수전을 이끌었다.

6조원대의 대우건설 매각에도 PEF의 활약이 돋보인다.

맵스자산운용은 내달중 8000억~1조원의 대규모 PEF를 조성해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금호컨소시엄에 참여할 예정이다.

KTB자산운용 장인환대표는 "요즘 자본시장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딜에는 PEF가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권 확보 사례도 잇따라

PEF의 전형적인 투자는 경영권을 확보한뒤 기업가치를 높여 재매각하는 '바이아웃(Buy out)'방식이다.

국내 PEF들도 초기엔 위험도가 낮은 단순 자금투자에 치중했지만 최근엔 최대주주가 돼 직접 경영에 뛰어드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최초의 PEF인 미래에셋 1호는 신우 성우지오텍 등 4개사 경영권을 행사중이다.

KTB의 PEF는 중앙저축은행과 SKM(옛 선경매그네틱)의 지분을 확보,지난달 경영진을 물갈이했다.

외자계 PEF의 첨병인 MBK파트너스도 HK저축은행과 한미캐피탈의 최대주주가 됐다.

메디슨 MK전자 등도 PEF가 경영에 참여한뒤 변신을 서두르는 회사들이다.

샘표식품은 우리투자증권의 '마르스1호'라는 PEF가 24.1%지분을 확보,경영참여를 선언했다.

사모펀드라는 특성상 투자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PEF가 경영권을 확보한 회사는 20곳에 달한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과도한 경영참여는 성장잠재력 저해"

PEF에 출자키로 약정된 돈은 20개 펀드 4조6422억원으로 5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20개 펀드중 서너개를 제외한 대부분이 투자를 실제 집행했다.

1조원짜리 대형 PEF도 등장했으며 추가설정과 자금확대가 잇따르고 있다.

대우증권이 3000억원 규모의 PEF를 12월중 만들고 맵스자산운용도 연내 2개를 추가 출범시킬 예정이다.

MBK파트너스는 기존 PEF에 자금을 추가로 넣어 덩치를 키웠으며,KTB도 출자액을 확대해 대우건설 등에 투자할 방침이다.

기업 산업은행 등 금융기관들도 PEF 투자에 뛰어들었으며 3000억원 규모의 PEF를 2개 만든 국민연금은 코스닥 상장사인 현진소재와 셀런에 300억원씩 투자한다.

하지만 이같은 펀드의 경영 참여 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적대적 M&A(인수·합병)를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지면서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과도하게 나섰던 것처럼 펀드 경영 참여가 단기적 성과 올리기에 급급하게 만들면서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을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펀드로선 대부분 단기내 주가를 올려 '먹튀'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사모펀드의 경우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것도 문제"라며 "펀드의 경영참여는 득보다는 실이 더 크다"고 말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