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3%'.지난 9월21일 발표된 신사법시험의 로스쿨(법과대학원) 졸업생 합격률이다.

일본 법조계에선 로스쿨제도 도입 이후 첫 시험의 합격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데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2004년 미국식을 본떠 만든 일본의 로스쿨은 과연 성공작인가 실패작인가.

2009년 출범 예정인 국내 로스쿨 제도에는 문제가 없을까.

지난 13일 일본 도쿄 외곽 구니리츠역 인근에 위치한 히토쓰바시 대학.일본경제학계를 대표하는 '히토쓰바시 학파'의 산실이자 아베 신조 내각의 핵심 경제요직인 재무상과 경제재정상을 배출한 학교다.

여기에 최근 또 하나의 경사가 추가돼 캠퍼스가 온통 들떠 있었다.

신사법시험(기존 사법시험은 구사법시험이라 부름)에서 합격률 83%(응시자 53명 중 44명 합격)를 기록한 것.1명이 응시해 합격한 시마네대학 로스쿨을 제외하면 전체 74개 로스쿨 가운데 사실상 합격률 1위다.

경쟁 상대로 여기고 있는 도쿄대(71%)는 물론 법학부문의 강자 와세다대(63%),게이오대(63%),주오대(55%) 등과 비교해도 탁월한 성적이다.

이 대학 로스쿨학장인 아키라 고토 교수는 "시험을 위한 공부는 특별히 가르치지 않았는데 좋은 법조인이 되려는 학생들의 열망이 있어서 합격률이 높게 나온 것 같다"고 평가했다.

24시간 개방하는 도서관과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영미법을 2학년 필수과목으로 짜놓은 커리큘럼 등은 이 학교만의 자랑거리.그러나 이 학교 학생들이 털어놓은 시험 합격 후일담은 높은 합격률 등 화려함의 이면에 감춰진 그늘의 깊이가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을 엿보게 한다.

"법과대학 2학년 때부터 로스쿨 졸업 때까지 총 5년간 고시학원을 다녔어요." 히토쓰바시대 로스쿨 건물 휴게실에서 만난 후세 마사키 학생은 로스쿨에 다닐 때는 수업을 따라가느라 바빠서 주로 토요일과 일요일을 이용해 학원을 다녔지만 수업이 파한 뒤 밤에 학원을 찾기도 했다고 한다.

다케시 야나기 학생은 학부시절 수업은 거의 출석하지 않고 학원만 다녔다.

그는 "법과대학과 로스쿨에서는 단답형 시험 답안을 위한 공부를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학원을 다닌다"고 말했다.

학원 수강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이오 법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뒤 소수정예 운영 방식이 마음에 들어 도쿄대는 시험도 보지 않고 히토쓰바시 로스쿨에 지원했다는 코마치 사치요 학생(여) 역시 학부 1학년부터 학원을 다녔다.

"대학 수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게 그녀가 밝힌 이유.와세다대학 인근에 있는 일본 최대 고시학원 와세다세미나의 에미코 무라코시 부장은 "학생들의 학원 수강이 필수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이로 인한 학생들의 경제적인 부담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밖에 없다.

로스쿨 학비는 국립대가 연간 80만엔(약 700만원),사립대가 두 배 수준인 160만엔(1400만원) 정도다.

여기에 학원수강료 연간 40만엔(약 350만원)을 합치면 국립대 로스쿨 학생의 연간 학비는 1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생활비는 물론 별도다.

이를 두고 학생들은 "신사법시험은 자본시험"이라고 얘기한다.

학생들은 그러나 정부가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면서 내세운 목표 '사고력을 길러주는 교육'에는 일단 후한 점수를 부여했다.

다케시 야나기 학생은 "로스쿨에서 사고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합격이 가능했다"고 말했으며,후세 마사기 학생도 "2년 동안 공부할 때는 몰랐는데 시험에 임했을 때 내가 변한 것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도쿄=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