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신도시에 위치한 P학원. 이 학원은 월말이면 학원비와 교재비를 내려는 학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나 지난 4월 기업은행의 'e-모아' 서비스를 도입하면서부터 학원비 수납 풍경이 확 바뀌었다.

모든 원생에게 가상계좌가 부여돼 집에서 PC로 돈을 보내면 실시간으로 학원 계좌로 일괄 입금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고지서 발급과 수납접수 및 확인 등의 일이 줄어 5명의 수납직원을 다른 업무로 돌릴 수 있었다.


'컨버전스 뱅킹'(Convergence Banking)이 뜨고 있다.

컨버전스 뱅킹이란 비즈니스와 금융이 하나로 결합돼 특화된 업종의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개념의 전자금융 서비스다.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금융과 비즈니스가 융합함으로써 고객의 편의를 높인 것이다.

사업체로선 자금관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데다 현금 거래에 따른 금전사고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컨버전스 뱅킹 서비스를 제공받는 기업은 자동으로 주거래 은행이 된다는 점에서 은행엔 강력한 영업수단이다.

기업은행은 학원 수납프로그램과 뱅킹서비스를 결합한 'e-모아' 서비스 외에도 △교회관리프로그램에 뱅킹서비스를 더한 'e-처치(church)'△아파트관리 전용 전자금융서비스인 '아파트 e-뱅킹' △상업용빌딩 아파트형공장 오피스텔 등을 겨냥한 '빌딩 e-뱅킹' 등 다양한 비즈니스에 맞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나은행도 '스쿨뱅킹'과 '캠퍼스뱅킹' 서비스를 앞세워 학교와 학원 등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캠퍼스 뱅킹은 수납 지출 결산 등의 학원 자금관리와 회계처리는 물론 원생등록과 수강신청 출결관리 성적집계 등 기본적인 학원 경영관리까지 지원한다.

국민,우리,신한은행 등도 관리사무소 업무에 금융 시스템을 결합해 관리비 부과와 수납 조회업무 등을 자동으로 해주는 '아파트뱅킹'을 내세워 아파트단지나 주상복합빌딩에 대한 영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컨버전스 뱅킹 서비스인 '기업통합자금관리서비스(CMS)' 시장을 둘러싼 은행 간 선점 경쟁은 총성없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CMS는 기업의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은행과 연결,기업시스템 내에서 구매 판매 급여 현금관리 등 다양한 자금거래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 기업 내에 가상지점을 설치하는 셈이다.

우리은행은 'WIN-CMS'로 한국통신 두산 등 1만90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특히 올 하반기에만 1만2000개 기업을 신규 고객으로 잡으며 시장 1위 자리(기업수 기준)를 굳히고 있다.

국민은행은 '사이버 브랜치'를 앞세워 그동안 약세였던 기업금융 시장을 적극 파고들고 있다. 현재 대기업.중견기업용 '사이버 브랜치' 732개,중소기업용 '사이버CFO' 6045개를 설치했다. 최근엔 중국공상은행과 글로벌 CMS 공동 사업 전개를 위한 제휴를 체결하는 등 해외 진출에도 나서고 있다.

기업은행은 'e-브랜치'를 내세워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방시설본부 등 공공기관과 현대자동차 등 9000여개 기업에 사이버 통합자금관리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최근엔 제1야전군사령부 시스템에 e-브랜치를 구축하며 군대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비즈파트너'로 동부화재 등 550여개 업체,하나은행은 '하나 빅넷(Bic-Net)'으로 SK네트웍스 롯데알미늄 등 400여개 업체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은행들이 이처럼 컨버전스 뱅킹 쟁탈전에 사활을 거는 것은 일단 기업이나 업체가 한 은행의 통합자금관리시스템을 도입하면 자금결제 외환거래 채권발행 등 모든 자금 업무와 재무거래를 해당 은행이 독식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개별 대출영업이 '소총공격'이라면 컨버전스 뱅킹은 영업분야에서 '핵폭탄'급 위력을 갖는 셈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과거에는 단순히 여신이 많은 은행이 주거래은행 역할을 하면서 해당 기업과의 거래를 통해 부수적 이익을 누렸지만 앞으로는 어느 은행의 컨버전스 뱅킹 서비스를 받느냐에 따라 주거래 은행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