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하이닉스반도체의 이천공장 증설을 허용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함에 따라 정부의 기업규제 완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투자금액만 13조5000억원에 이르고 고용창출 효과도 9000명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를 북돋아야 할 판에 오히려 투자의 발목을 잡는 정부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특히 기업환경개선 종합대책을 준비 중인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등 경제 부처들이 청와대가 내건 균형발전 코드에만 매달린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 "균형발전이 더 중요"

정부가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불가의 배경으로 명목상 내세우는 것은 환경 문제다.

산자부는 우선 하이닉스가 추진 중인 공장증설 지역이 수도권정비계획법과 산집법(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상 자연보전권역에 위치해 있다고 설명했다.

자연보전권역은 상수원 보호 등을 위해 대기업의 공장 신·증설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곳이다.

산자부는 여기에다 하이닉스 공장 제조공정에는 인체에 유해한 구리가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하이닉스의 이천공장 설립 허용 여부는 다른 대기업과 달리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 산자부 입장이다.

정부가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허용을 꺼리는 속내는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활성화보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세운 균형발전 원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다.

"하이닉스 증설은 청주공장을 대안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재경부 관계자의 발언이 이 같은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하이닉스 "이대로는 도태"

하이닉스 관계자는 정부의 이천공장 불허 방침에 매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이천공장의 증설은 미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나 다름없다"며 "정부가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이닉스는 2010년까지 3개의 300mm 팹(FAB·반도체 생산라인)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으며 13조5000억원이라는 거금을 투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다만 현재 확보하고 있는 1만8000평 이외 5만7000평의 부지가 추가로 요구돼 정부에 수도권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이닉스는 이천공장 외 대체입지를 검토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미 이천공장에 부지가 확보돼 있는데 다른 곳을 검토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려면 연구·개발(R&D) 센터가 있는 이천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청주공장 증설은 200mm 팹을 300mm 팹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어 장기경쟁력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내부 분석이다.

우수 인력 확보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회사측은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천공장 증설이 무산될 경우 중국 이전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박준동·이태명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