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역에서 멀지 않은 주택가에 있는 인일여고 앞길.학교 정문 바로 앞 짙은 나무색 벽돌로 지은 3층 건물 벽면에 '천주교 성 아우구스띠노수도회'라는 금빛 글씨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동인천역에서 택시를 탔더니 기본요금 거리다.

수도회 건물은 벽돌조이지만 전통 가옥의 일각문처럼 기와 대문을 세웠고,담장 위쪽과 지붕에도 기와를 얹어 한옥 분위기를 살렸다.

1층 앞쪽으로는 작은 마루도 달아냈다.

학교 바로 앞의 주택가에 있는 데다 얼핏 보기에도 일반 주택 같아서 정말 이곳이 수도원일까 싶다.

하지만 정문을 지나 계단을 따라 오르자 아담한 마당 건너편의 성모자상이 이곳이 수도원임을 알려준다.

수도원 건물 1층에 들어서자 모든 것이 좌식이다.

오른쪽에는 20여명이 방바닥에 둘러앉아 담소하거나 회의를 할 수 있는 방이 있다.

왼편에는 목재로 실내를 꾸민 넓은 방이 있는데 그냥 방이 아니라 수도자들이 하루 네 차례씩 모여 함께 기도를 드리고 미사를 올리는 성당이다.

1985년 호주와 영국에서 한국에 처음 들어와 아우구스띠노수도회 한국 지부를 세운 외국인 수도자들이 1994년 1월 본부를 서울 뚝섬에서 인천으로 옮기면서 건물의 뼈대는 양식으로 하되 한옥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애쓴 결과다.

"우리 수도회는 형제애와 공동체 생활을 특히 강조합니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이 '수도 규칙서'에서 강조한 것처럼 수도생활의 기본원칙은 하느님과 모든 이웃에 대한 헌신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하느님 안에서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함께 하느님을 찾는 것이 수도생활 전체를 특징짓기 때문이지요.

외국인 수도자들이 이 집을 한옥처럼 꾸민 것도 편안한 분위기에서 공동생활을 보다 잘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아우구스띠노수도회 한국지부장을 맡고 있는 김정덕 수사(47)의 설명이다.

아우구스띠노수도회는 대표적인 교부철학자이며 영성가인 아우구스띠노 성인(354~430)의 수도영성을 따르는 수도단체다.

성 아우구스띠노는 로마제국에 속해 있던 북아프리카의 소도시 타카스테(지금의 알제리)에서 태어나 '고백록''신국론''삼위일체론' 등 수많은 저서를 남긴 신학자요 영성가였다.

특히 그가 쓴 '아우구스띠노 규칙서'는 서방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 규칙서로서 '성베네딕토 규칙서'보다 120년 전,'성프란치스코 규칙서'보다 800년 전 집필돼 수도 전통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5~6세기께 반달족의 박해를 피해 유럽으로 건너간 아우구스띠노 계열의 수도단체들은 13세기 교황의 명령에 의해 두 차례의 통합과정을 거쳐 탁발수도회로 자리잡는다.

종교개혁을 이끈 마틴 루터도 파문 당하기 전에는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독일 에르푸르트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했던 수도자였다.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아시아 진출은 필리핀과 일본,중국 등을 통해 400여년 전부터 시작됐지만 한국 진출은 상당히 늦은 편이었어요.

인천교구장이었던 나길모 주교님이 일본 아우구스띠노수도원을 방문한 다음 한국 진출을 요청해 호주 관구와 영국·스코틀랜드 관구에서 수도자를 파견했던 것이지요.

아직 역사가 짧고 가진 것도 없지만 병원사목과 영성상담,피정지도,신학교 강의,결손가정 아이들을 위한 그룹홈 운영 등을 통해 성아우구스티노의 수도 전통을 이 땅에 뿌리내리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우구스띠노수도회의 수도자는 모두 14명.지난 10일 종신서원을 한 2명을 포함해 성대서원(聖大)서원자가 7명,청원기에 있는 수사가 7명으로 성대서원자 가운데에는 사제도 2명 포함돼 있다.

많지 않은 수도자들이 전동수도원(본원)과 강화군 선원면의 신학원인 돌렌띠노수도원,피정의 집이 있는 연천 착한의견의성모수도원,서울 분원에서 수도생활과 봉사를 겸하고 있다.

전동수도원에서는 결손가정 아동의 그룹홈인 '너랑나랑'을 운영하는 데에도 많은 힘을 쏟고 있다.

"결손가정 아이들을 돌보려면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미 가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은 아이들이라 여러 가지 면에서 세심하게 돌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돌본다고 해도 아이들의 요구만큼 다 해주지 못해서 마음이 아플 때가 많지요.

다른 아이들처럼 휴대폰을 사줄 수도 없고,용돈도 넉넉히 줄 수 없고…."

때론 아이들이 가출해서 사고를 저지르기고 하고 소년원을 들락날락하는 일도 있어 힘이 든다는 김 수사.그룹홈을 나간 아이가 휴대폰을 살 때 보증을 서줬다가 요금을 뭉칫돈으로 물어줘야 했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수사는 일상사의 그런 고생들을 초월한 모습이다.

그 모든 일상의 다사다난을 자기 성장의 기회로 삼는 듯했다.

"수도원은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만 오는 곳이 아닙니다.

천사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요.

그들은 수도원에 올 때 자기 성격과 상처,감정까지 다 가져와요.

수도란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이런 것들을 정화시키고 하느님을 만나는 과정입니다.

물론 세상 안에서도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지만 수도원 생활은 이를 위한 좀 더 적극적 투신이 아닐까 싶어요."

서른네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온 김 수사는 "마음으로는 몇 번이나 보따리를 쌌다"고 했다.

인간관계에서 주고받는 상처 때문이다.

김 수사는 "나를 힘들게 하는 그런 사람,그런 순간이 바로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고 생각하면 문제도 풀리고 나도 성장하게 되더라"고 했다.

오후 5시40분,각자 소임에 충실하던 수도자들이 1층 큰방(성당)에 모여든다.

사찰의 선방처럼 십자가를 중심으로 수사들이 양쪽 벽을 따라 놓인 방석에 앉아 저녁기도를 드리는 소리가 나즈막히 수도원에 퍼져나간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 아우구스띠노의 울림처럼….

인천=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