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이 TV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연기자 이상의 인기를 얻기도 한다. 능력이 뛰어난 탓이기도 하지만 점점 강도가 더해가는 영역파괴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옳다. 개그맨이 시사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는 것, 리포터가 기상캐스터로 나서는 것 등이 모두 같은 방향이다.

대중매체에서의 영역파괴 현상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자신이 속해있는 비즈니스 영역도 이미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조치를 취하는 경영자는 아직 적다. 비즈니스 영역파괴는 한 업종의 사양화로 직결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분야보다도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최근의 변화를 보라. 인터넷포털 업체들이 신문 방송과 같은 미디어들의 영역에 들어온 지는 이미 오래다. 복합상영관으로 바뀐 극장들은 식당의 손님과 대형마트의 고객들을 빼앗아가고 있다.

모든 변화가 그렇듯 영역파괴의 이 트렌드도 제대로 활용하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놓치면 위기를 불러오게 돼있다. 어떻게 활용해서 혁신 기회를 잡을 지가 핵심 경영화두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지금 하고 있는 비즈니스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성을 하는 일이다. 우리는 무엇을 파는 회사인가. 우리의 고객은 누구이고 경쟁자는 어떤 회사인가.

일본의 세이코와 시티즌 등에 일격을 받은 스위스는 다시 '시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예전의 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였다. 그러나 고객들은 그 이상을 원하고 있었다. 시계는 이제 패션이고 액세서리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고 그 결과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된 '스와치'를 내놓을 수 있었다.

반대로 망친 경우도 있다. 할리우드 초기의 영화제작자들은 스스로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만 정의하고 있다가 기회를 놓쳤다. 텔레비전도 자신들과는 관련없는 비즈니스로 여겼고 만화영화가 나왔을 때도 남의 일로 생각했다.

영화제작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오락사업을 업(業)의 정의로 내릴 수 있었다면 영화제작업자들은 누구보다 많은 경험과 노하우로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업의 정의는 누가 내리는 것일까. 스스로 다른 영역의 고객들까지 흡수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될까. 업의 정의는 철저히 고객들에게서 영감을 얻고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가수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것은 시청자들이 그들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시사방송을 개그맨이 맡은 것도, 리포터가 기상캐스터로 나서게 된 것도 어려운 것을 싫어하는 고객들의 마음을 읽는 결과다.

비즈니스를 제대로 정의할 수 있게 되면 나머지는 선택의 여지가 많다. 우리 일에만 집중하며 다른 부분은 외부화(outsourcing)할 수도 있는 것이고 다른 업종의 여러 업체들과 협업(collaboration)으로 경쟁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운이 좋을 경우는 다른 업종의 고객들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러한 선택은 그러나 지금 세상의 모든 영역들이 파괴되고 있다고 실감하고 변화할 준비를 갖출 때라야 가능한 일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