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권력 서열 2위인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17일 "북한은 미국이 금융제재를 유지하는 한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한·미 정상이 지난 14일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시도하겠다고 발표한 후 처음 나온 북한의 공식 반응이다.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비동맹운동(NAM) 정상회의에 참석한 김 위원장은 이날 "미국이 북한 은행계좌 동결과 북한을 돕는 금융기관들에 대한 경고 등 잇단 대북 제재 조치들을 유지하면서 우리에게 무조건 회담장에 복귀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미국이 제재를 풀기 전엔 회담에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했다.

북한이 이처럼 확고부동한 이유는 미국의 '제재 조치'들을 정권 말살 시도로 보기 때문이다.

북한은 16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도 포르투갈에서 세계 최대 규모인 750만달러의 위조사건이 발생했으나 미국이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미국의 금융제재 소동은 우리를 불법국가로 몰아붙여 공화국의 권위와 위상에 먹칠을 하고 우리 제도를 압살하려는 데 목적을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특히 지난해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자금이 동결된 데 대해 중앙당 산하 39호실이 강력 반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39호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부서로 외화벌이와 돈세탁에서 BDA의 지점망을 주로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BDA 폐쇄 이후 북한은 상반기 대중 수출이 2000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하는 등 부진한 모습이지만 최대 무역파트너인 중국과의 전체 교역량에는 큰 차이가 없어 거시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은 조짐은 없다.

반면 39호실은 마카오에 이어 베트남 싱가포르 일본으로 확대되고 있는 미국의 제재에 상당한 위협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북한 외무성 대표들이 국제 회의장 사석에서 "힘있는 기관(39호실)이 BDA 돈부터 찾기 전엔 6자 회담을 하지 말라고 한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미국이 BDA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지 않는 한 '포괄적 접근 방안'이 북한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이 나오는 이유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