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서머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전 미국 재무장관)는 14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은행 주최 '외환보유액 운용 국제포럼'에서 "지금보다 2년 전 수준으로 외환보유액을 줄인다고 해서 한국에 외환위기가 발생하겠느냐"며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초과 외환보유액을 수익이 높은 분야로 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국은행에 권고했다.

그는 "통상적으로 수입액의 3~6개월분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으면 충분하고 국제 자본시장에 밀접하게 연계된 점을 감안하더라도 1년 미만의 단기 외채 정도만 갖고 있으면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외환보유액 운용정책 바뀌나

서머스 교수의 이 같은 발언은 외환보유액 운용에 매우 소극적인 한국은행 주최 '외환보유액 운용 국제포럼'을 통해 나왔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한국은행의 향후 외환보유액 운용 전략이 수익성 위주로 옮겨가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 아니냐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지난 8월 말 2270억달러로 경제 규모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월 수입액이 250억달러 수준이기 때문에 6개월치 수입액은 1500억달러 정도이고 1년 미만의 단기 외채는 지난 3월 말 기준 744억달러에 불과하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700억~1500억달러 초과 보유 상태라는 얘기다.

이영균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이날 "외환보유액 증가에 따른 기회 비용과 수익을 늘릴 필요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회사채는 물론 자산담보부증권(ABS) 주식 등으로 투자 대상을 확대하는 나라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외환보유액을 다양하게 운용하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전 세계 불균형 해소 시급

이날 회의에서 거론된 또 다른 주요 주제는 전 세계 불균형(global imbalance) 문제였다.

지난해 8050억달러에 달했던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일본(1530억달러)과 산유국(3280억달러) 중국(1400억달러) 아시아 신흥국(680억달러) 등의 경상수지 흑자와 대충 맞아떨어진다는 것.

서머스 교수는 "가난한 나라들로부터 부자 나라로 돈이 흘러들어간다는 것은 국제 금융시장의 아이러니"라며 "신흥 시장국의 외환보유액 운용이 국제 금융시장의 흐름을 좌우할 정도로 커졌다"고 우려했다.

케네스 레이 세계은행 재무관도 "외환위기를 겪었던 나라들이 위험을 전혀 감당하지 않으려 한다"며 "이 때문에 세계 경제에 비대칭 문제가 생기고 신흥 시장국들이 외환보유액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보유액의 경제적 효과

서머스 교수는 "외환보유액의 투자 수익성을 높일 경우 경제성장률이 지금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2조달러에 달하는 121개 국가의 초과 외환보유액은 국내총생산(GDP)의 19%에 달하는데 이 돈에서 5%의 수익을 추가로 얻을 수 있다면 매년 GDP를 1%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서머스 교수는 "연금과 같은 장기투자 펀드가 유동성 위주로 단기 미국 채권에 투자하는 것은 범죄"라며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투자하면 거시 경제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