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悳煥 < 서강대 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 >

국제천문연맹이 명왕성을 행성에서 퇴출시키기로 결정함으로써 태양계의 행성은 이제 8개로 줄어들었다.

전 세계의 교과서와 백과사전을 고쳐야 하고,과학관에 전시된 태양계 모형도 바꿔야 한다.

명왕성을 발견했던 미국의 천문학계가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런데 이번 결정으로 명왕성이 하늘에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태양계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리스 신들의 신성함이 훼손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명왕성이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공전하고 있는 '케레스'와 명왕성 바깥에서 돌고 있는 '2003 UB313'(일명 '제나')과 함께 '왜행성'(矮行星)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천체로 그 분류가 바뀔 뿐이다.

앞으로 명왕성과 함께 왜행성으로 분류될 천체가 10여개나 된다고 한다.

천문학자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명왕성을 퇴출시킨 것은 아니다.

최근에 허블망원경 등을 통해 애써 얻어낸 태양계에 대한 정보를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실제로 행성의 정의는 우리의 천문 지식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왔다.

본래 '행성'(行星)은 무수히 많은 별들 사이를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는 '떠돌이 별'을 뜻한다.

맨눈으로 볼 수 있었던 태양과 달,그리고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그런 행성이었다.

오늘날 요일의 이름도 그런 행성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17세기에 망원경이 개발되고,태양이 우리 우주의 중심이라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행성의 정의도 달라졌다.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지구가 행성으로 전락(轉落)했고,달은 지구의 바깥을 도는 '위성'(衛星)으로 변해버렸다.

1781년과 1846년에 천왕성과 해왕성이 발견되면서 태양계 행성의 수도 늘어났다.

이번에 문제가 된 명왕성은 1930년에 미국 로웰 천문대의 클라이드 톰보가 발견해서 태양계의 행성에 포함됐던 것이다.

명왕성은 발견된 직후부터 그 정체에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공전면이 다른 행성들과 17도나 기울어져 있고,공전 궤도도 심하게 일그러진 타원형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왕성보다 태양에 더 가까이 접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도 명왕성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낸 사실은 그리 많지 않다.

명왕성은 그 크기가 달의 3분의 2에 지나지 않고,표면의 반사도도 매우 낮아 망원경으로도 쉽게 볼 수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저승신 '플루토'를 따라 '명왕성'(冥王星)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우주에 떠있는 초고성능의 허블망원경으로 명왕성의 표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

명왕성을 처음 발견했던 미국은 그런 명왕성의 정체를 확실하게 밝혀내기 위해서 올 초에 '뉴호라이즌'이라는 우주 탐사선을 발사했다.

우리가 그 결과를 확인하려면 앞으로 9년을 더 기다려야만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태양계의 모습은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복잡하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 벨트에는 엄청나게 많은 암석 덩어리가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마구 날아다니고 있다.

그런 소행성들 중에는 우리 천문학자들이 발견한 덕분에 공식적으로 우리 선조 과학자의 이름이 붙여진 것도 있다.

명왕성 바깥에도 역시 수만개의 소행성들이 떠돌고 있다.

카이퍼 벨트라고 부르는 이 영역은 헬리 혜성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 바깥에는 헤일-밥이나 하쿠다케 혜성의 고향인 오르토 구름이 자리잡고 있다.

모두가 20세기에 어렵게 밝혀낸 사실들이다.

우리가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에 붙여진 그리스와 로마 신(神)의 이름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별들의 정체나 운명이 붙여놓은 이름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세계화 시대에 서양에서 붙인 이름을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지만,서양 신화를 무작정 믿고 좋아할 이유도 없다.

기왕에 국제적으로 사용할 이름이라니까 왜행성 케레스와 제나를 '곡신성'(穀神星)과 '제나성'(齊娜星)으로 순화시켜 받아들이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