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의 공사장 인부,그리고 레스토랑 웨이터 경험이 경제학자의 길을 걷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미국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 다음으로 강력한 권력을 가진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52)이 지난 1일 고향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州)의 작은 도시 딜론을 방문한 자리에서 밝힌 소회다.

버냉키는 "딜론 고교를 졸업한 후 여름에 병원 건설공사장 인부로,그리고 대학재학 중 여름방학에는 한 레스토랑에서 주 6일 웨이터로 일했다"면서 그런 경험이 자신을 평범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관한 학문인 경제학으로 이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장 인부로 일한 첫 날 너무 피곤해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으며 그냥 의자에서 잠이 들어버렸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버냉키는 1953년 12월13일 조지아주 오거스타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를 따라 조부가 약국을 경영한 딜론으로 이주해 하버드 대학 입학 전까지 17년간을 거주했다.

그런 그가 고향을 찾았으니 개인적으로는 금의환향한 셈이다.

그러나 인구 6800여명의 소도시로 과거 담배와 직물 산지로 유명했던 딜론은 버냉키가 주창하는 세계화와 생산성 향상 논리에 역풍을 맞아 쇠퇴일로를 걷고 있어 그를 따뜻하게 맞을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딜론은 그를 품었다.

고교 동창생 90여명과 주민 수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환영회를 열어줬으며 그가 방문한 지난 1일을 '벤 버냉키의 날'로 정하고 '경제대통령'이 된 고향 소년을 환영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시민의 가장 큰 영예인 팔메토 메달도 수여했다.

버냉키는 환영 연설에서 학창시절 공사장 인부와 레스토랑 웨이터 경험을 통해 소도시 미국민들이 생계를 이어가기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경제 발전을 갈망하는지를 배웠다면서 "정책 당국자인 FRB 의장으로서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버냉키 의장의 딜론 고교 시절 은사와 동창들은 그를 '아주 총명했던 학생'으로 기억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는 11세 때 영어 철자 맞히기 대회에 나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1등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