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록·윤상림·김홍수 브로커 시리즈에 이어 성인 오락실 '바다이야기' 파문에 이르기까지 대형 비리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자 제도 개선을 통해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로비스트와 탐정 양성화 법이 새삼 주목받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대형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빠지지 않는 불법 브로커의 음성적인 로비를 뿌리 뽑기 위해서라도 로비스트를 양성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현재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에서만 200여명의 '비공인' 로비스트들이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견 로펌의 한 변호사는 "대형 로펌들에서 고문 등으로 일하고 있는 정·관계 출신 고위인사들도 일종의 로비스트"라며 "비리를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면 로비스트를 양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입법 과정과 정부의 정책수립 과정에 다양한 이익집단의 견해를 반영할 수 있는 장치,즉 로비가 필수적인 데도 '로비스트=브로커'라는 부정적 인식 때문에 법제화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사립 탐정'을 도입하자는 안도 설득력을 얻어 가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이 일손이 달려 일반인들의 조사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다면 일정한 자격을 갖춘 민간에 관련 업무를 위임하는 것도 차선책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가운데 대검찰청에서 지난 25일 '대체적 분쟁처리 제도(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란 연구 과제가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ADR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도 의욕적으로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이어서 시행 가능성이 높다.

ADR는 민사 또는 형사 분쟁을 법원이 아닌 민간 기구에서 해결하는 방식이다.

대검 비상임 연구관으로 있는 안범진 검사는 "미국에서는 법원에 제소된 사건 중 10% 이하만이 판결로 종결되고 나머지는 당사자 사이의 협상에 의한 화해로 종결된다"며 ADR의 효능을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래층 위층 주민 사이에 소음 때문에 다툼이 벌어졌거나 전세금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면 '이웃분쟁 해결센터'로 달려간다.

법원이나 검찰 경찰도 경미한 폭행이나 협박 사건은 이 곳에 의뢰한다.

센터에는 전직 법관이나 변호사 교수 등 법률 전문가들이 조정위원으로 자원 봉사한다.

미국 전역에 이런 센터가 550여개 설치돼 있다.

조정위원이 무려 1만9500명에 이른다.

연간 조정신청 건수는 9만7500건이며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4만5500건의 조정이 여기서 이뤄진다.

비싼 돈을 들여 가며 법원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역시 비영리 민간단체인 미국중재협회(AAA)의 중재 규칙은 매년 수백만 건의 비즈니스 계약서에 명시된다.

당사자 간 합의가 안 될 경우 AAA가 최후의 해결사로 나선다는 내용이다.

아예 영리를 목적으로 기업을 차려놓고 이런 분쟁을 해결해 주는 곳도 있다.

30개 이상 도시에서 연 700억원 이상 수익을 올리는 잼스(JAMS),4000개 이상 기업이 회원으로 등록된 CPR,온라인 분쟁해결 회사(OR) 등이 그 주인공들.주로 퇴직한 법관들이 분쟁조정위원으로 일한다.

대검 관계자는 "이런 분쟁해결 시스템으로는 '전관예우' 문제가 발붙일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