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가 내리는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유통상가 3층 게임기 시장.도무지 손님이 보이지 않는다.

문을 닫은 가게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다.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한다.

멍하니 담배를 피워 물고 말을 붙여도 대꾸도 않는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매상이 얼마나 줄었느냐"고 묻자 "매상은 무슨 매상이냐"고 역정을 낸다.

지난 18일 '바다이야기 파문'이 터진 후 국내 최대 성인게임기 시장인 이곳은 '쑥대밭'으로 변해 버렸다.

성인게임장들이 단속을 피해 문을 닫거나 폐업하는 바람에 영등포 게임기 시장은 개점휴업 상태다.

오후인데도 "마수걸이도 못했다"고 말하는 상인이 많은 것을 보니 매상이 평소의 10%도 안 되는 것 같다.

복도에는 파문을 몰고 온 사행성 게임기들이 줄지어 서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기에 대박의 희망을 걸었을까.

게임기 '시작' 버튼을 눌러 보니 먼지가 손에 한 웅큼 묻어난다.

기판만 남아 해체된 듯한 게임기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가게를 지키고 있는 여점원에게 말을 걸자 "사장님 안 계신다"며 딴청을 부린다.

한 가게에 상인 몇 명이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성인게임기를 취급한다는 한 상인은 "거짓말 아니고 하루 종일 찾아오는 손님이 한 명도 없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해서 그냥 문을 열어놓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상인은 "게임기 업체들이 조폭과 손잡고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매도하고 있어 불쾌하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게임기 판매·수리를 5년째 하고 있다는 상인은 "4년쯤 전부터 유통 구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며 "바다이야기 같은 대박은 이곳 상인들에겐 남의 얘기"라고 푸념했다.

도박 게임기 제조사가 중간 유통까지 장악해 직접 게임장으로 공급한다는 것.그는 "바다이야기처럼 이름이 알려지면 게임장 업주들은 너도나도 직거래를 한다"며 "우리까지 도매급으로 내몰려 허탈하다"고 푸념했다.

영등포 게임기 시장 상인들 사이에도 격차가 심했다.

바다이야기 오션파라다이스 등에 발빠르게 붙었던 일부 상인들은 '대박'을 터뜨렸다고 했다.한 상인은 "상품권 장사를 해보고 싶었는데 주위 상인들이 '빽 없으면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고 얘기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