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기행] ④ 인천 노틀담수녀원 ‥ 가난으로써 貧者를 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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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지하철 계산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문화회관 정류장에 내리자 '계양문화회관'과 '노틀담수녀회ㆍ노틀담복지관'을 함께 가리키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이정표를 따라 5분쯤 걸었을까.
계양문화회관 지척에 '노틀담수녀회 평화의 모후 관구'라는 표지판이 붙은 노틀담수녀회 정문이 서 있다.
정문 오른쪽에는 가르멜수도회와 전교가르멜수녀회의 입간판도 함께 서 있는데,알고보니 계양산 자락의 같은 동네에 3개의 수도원이 있다.
키 작은 측백나무가 담장처럼 서 있는 솔숲 길에 들어서자 왼편에는 노틀담복지관과 유치원,오른편 산자락 쪽에는 수녀원이 자리잡고 있다.
관계자 외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을 뒤로 하고 수녀원에 들어서자 정감어린 성모상이 먼저 반긴다.
성모상 뒤로 보이는 계양산의 초록빛과 맑게 갠 하늘빛이 유난히 푸르다.
성모상에 예를 표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붉은 벽돌로 지은 수녀원 건물은 성당을 사이에 두고 본원과 양성소 건물이 ㄷ자 모양으로 돼 있는데,본원은 앞에서 보이는 건물을 포함해 뒤쪽의 건물 3개가 ㅁ자의 폐쇄형 수도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본원 지층과 성당,양성소 1층 일부는 외부인에게 공개되지만 나머지 공간은 출입이 금지된 봉쇄구역이다.
이 낯선 공간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수녀원 하면 인생에 실패한 여성들이 세상을 버리고 들어가는 곳이라고 잘못 아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수도원은 삶의 도피처가 아니라 하느님 한분에 의지해 자기를 온전히 바침으로써 평화와 기쁨을 얻기위해 오는 곳 입니다."
관구장 이분희 수녀(안칠라 마리아)의 설명이다.
수녀들의 입회 동기는 다양하다.
가톨릭 집안 출신이어서 어릴 때부터 수도자를 꿈꿔온 사람도 있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고 싶지만 혼자서는 어려울 것 같아서 수도공동체를 찾아온 사람도 있다.
노틀담수녀회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67년.
독일에서 온 3명의 선교사(수녀)들이 그해 말부터 시내버스 안내양을 위한 교양센터를 운영하면서 사회봉사를 시작해 지금은 186명의 회원들이 인천 박문여고를 비롯해 초ㆍ중등 학교와 유치원,복지관,어린이집,장애인복지관과 종합사회복지관,노인복지지설 등 방대한 분야에서 사회에 봉사하는 기도공동체로 발전했다.
"처음 수녀원에 들어와 1년반~2년간의 청원기와 2년간의 수련기를 보내고 나면 정결과 청빈,순명의 복음 삼덕(三德)을 처음으로 서원하게 됩니다. 이는 가난하게,내 의지를 꺾고,정결하게 살겠다는 것인데 이 때의 정결은 육체적인 것 뿐만 아니라 하느님 외의 다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겠다는 정신의 순결까지 포함하는 것이지요."
노틀담수녀회에서는 특히 1804년 프랑스에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 처음 노틀담수녀회를 창설한 성녀 줄리 빌리아르의 영성,즉 '하느님의 좋으심'에 대한 영성을 이어받아 독일 코스펠트 지방에서 노틀담 수녀회를 만든 힐리곤데의 '솔리 데오(Soli Deoㆍ오직 하느님만)' 정신을 강조한다.
성녀 줄리는 하체 마비로 거동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오직 하느님만' 믿고 하느님께 내맡기는 단순함의 정신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했다.
"살다보면 마음이 여러가지로 흩어질 때가 많은데 그럴수록 '단순한 기쁨'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생각이 짧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생각과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 외에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을 주지 않고 한 방향을 바라보고,모든 것이 하나에 집중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사물을 볼 때에도 예쁘다,밉다,잘 생겼다,못 생겼다 등 우리 생각과 기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창조의 본질,하느님의 살아계심을 본다면 그것이 '솔리 데오'요 관상입니다."
안칠라 수녀는 "시비와 선악의 생각으로 대상을 보면 그 대상도 나를 그렇게 보기 때문에 일치와 교감을 이룰 수 없다"며 "모든 사물 안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는 것이 단순한 정신"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노틀담의 수녀들은 성녀 줄리가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 그랬던 것처럼 '가난한 자들을 가난으로써 섬겼던 것'을 지향한다.
수녀회에 들어온 지 34년째인 그는 "정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이 좀 평화로워졌다는 것"이라며 "세상과 사람,일에 대해 못마땅한 것이 있더라도 모든 것을 하느님 안에서 보고 맡기니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산업사회에선 지능지수(IQ)가 지도자 역할을 했고 그 뒤엔 감성지수(EQ),요즘엔 도덕성지수(MQ)를 강조하고 있는데 정말 필요한 것은 영성지수(SQ)입니다. 남들이 말하는 것 너머의 것,그것이 꼭 피안이 아니더라도 그 너머를 체험ㆍ확인하거나 말하고 증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해요. 그런 점에서 모두가 돈과 명예를 좇아가는 세상에서 이런 것을 버려도 잘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수도원의 삶은 그 자체로서 큰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내년으로 한국 진출 40년을 맞는 노틀담수녀회는 그래서 '영적 쇄신'을 가장 큰 기념사업으로 정했다.
수도자의 이미지가 영성가로서보다 사회복지와 교육,선교에 헌신하는 모습으로만 비춰지는 현실을 반성하고 수도자 본연의 정진에 좀 더 매진하겠다는 얘기다.
오후 6시,수녀들의 저녁기도 소리가 성당과 수도원에 나즈막히 울려퍼진다.
'오직 하느님만' 의지했던 성녀 줄리와 힐리곤데의 영성을 표상하는 해바라기 몇 송이가 수도원 성당 앞을 지키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이정표를 따라 5분쯤 걸었을까.
계양문화회관 지척에 '노틀담수녀회 평화의 모후 관구'라는 표지판이 붙은 노틀담수녀회 정문이 서 있다.
정문 오른쪽에는 가르멜수도회와 전교가르멜수녀회의 입간판도 함께 서 있는데,알고보니 계양산 자락의 같은 동네에 3개의 수도원이 있다.
키 작은 측백나무가 담장처럼 서 있는 솔숲 길에 들어서자 왼편에는 노틀담복지관과 유치원,오른편 산자락 쪽에는 수녀원이 자리잡고 있다.
관계자 외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을 뒤로 하고 수녀원에 들어서자 정감어린 성모상이 먼저 반긴다.
성모상 뒤로 보이는 계양산의 초록빛과 맑게 갠 하늘빛이 유난히 푸르다.
성모상에 예를 표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붉은 벽돌로 지은 수녀원 건물은 성당을 사이에 두고 본원과 양성소 건물이 ㄷ자 모양으로 돼 있는데,본원은 앞에서 보이는 건물을 포함해 뒤쪽의 건물 3개가 ㅁ자의 폐쇄형 수도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본원 지층과 성당,양성소 1층 일부는 외부인에게 공개되지만 나머지 공간은 출입이 금지된 봉쇄구역이다.
이 낯선 공간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수녀원 하면 인생에 실패한 여성들이 세상을 버리고 들어가는 곳이라고 잘못 아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수도원은 삶의 도피처가 아니라 하느님 한분에 의지해 자기를 온전히 바침으로써 평화와 기쁨을 얻기위해 오는 곳 입니다."
관구장 이분희 수녀(안칠라 마리아)의 설명이다.
수녀들의 입회 동기는 다양하다.
가톨릭 집안 출신이어서 어릴 때부터 수도자를 꿈꿔온 사람도 있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고 싶지만 혼자서는 어려울 것 같아서 수도공동체를 찾아온 사람도 있다.
노틀담수녀회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67년.
독일에서 온 3명의 선교사(수녀)들이 그해 말부터 시내버스 안내양을 위한 교양센터를 운영하면서 사회봉사를 시작해 지금은 186명의 회원들이 인천 박문여고를 비롯해 초ㆍ중등 학교와 유치원,복지관,어린이집,장애인복지관과 종합사회복지관,노인복지지설 등 방대한 분야에서 사회에 봉사하는 기도공동체로 발전했다.
"처음 수녀원에 들어와 1년반~2년간의 청원기와 2년간의 수련기를 보내고 나면 정결과 청빈,순명의 복음 삼덕(三德)을 처음으로 서원하게 됩니다. 이는 가난하게,내 의지를 꺾고,정결하게 살겠다는 것인데 이 때의 정결은 육체적인 것 뿐만 아니라 하느님 외의 다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겠다는 정신의 순결까지 포함하는 것이지요."
노틀담수녀회에서는 특히 1804년 프랑스에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 처음 노틀담수녀회를 창설한 성녀 줄리 빌리아르의 영성,즉 '하느님의 좋으심'에 대한 영성을 이어받아 독일 코스펠트 지방에서 노틀담 수녀회를 만든 힐리곤데의 '솔리 데오(Soli Deoㆍ오직 하느님만)' 정신을 강조한다.
성녀 줄리는 하체 마비로 거동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오직 하느님만' 믿고 하느님께 내맡기는 단순함의 정신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했다.
"살다보면 마음이 여러가지로 흩어질 때가 많은데 그럴수록 '단순한 기쁨'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생각이 짧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생각과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 외에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을 주지 않고 한 방향을 바라보고,모든 것이 하나에 집중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사물을 볼 때에도 예쁘다,밉다,잘 생겼다,못 생겼다 등 우리 생각과 기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창조의 본질,하느님의 살아계심을 본다면 그것이 '솔리 데오'요 관상입니다."
안칠라 수녀는 "시비와 선악의 생각으로 대상을 보면 그 대상도 나를 그렇게 보기 때문에 일치와 교감을 이룰 수 없다"며 "모든 사물 안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는 것이 단순한 정신"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노틀담의 수녀들은 성녀 줄리가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 그랬던 것처럼 '가난한 자들을 가난으로써 섬겼던 것'을 지향한다.
수녀회에 들어온 지 34년째인 그는 "정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이 좀 평화로워졌다는 것"이라며 "세상과 사람,일에 대해 못마땅한 것이 있더라도 모든 것을 하느님 안에서 보고 맡기니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산업사회에선 지능지수(IQ)가 지도자 역할을 했고 그 뒤엔 감성지수(EQ),요즘엔 도덕성지수(MQ)를 강조하고 있는데 정말 필요한 것은 영성지수(SQ)입니다. 남들이 말하는 것 너머의 것,그것이 꼭 피안이 아니더라도 그 너머를 체험ㆍ확인하거나 말하고 증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해요. 그런 점에서 모두가 돈과 명예를 좇아가는 세상에서 이런 것을 버려도 잘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수도원의 삶은 그 자체로서 큰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내년으로 한국 진출 40년을 맞는 노틀담수녀회는 그래서 '영적 쇄신'을 가장 큰 기념사업으로 정했다.
수도자의 이미지가 영성가로서보다 사회복지와 교육,선교에 헌신하는 모습으로만 비춰지는 현실을 반성하고 수도자 본연의 정진에 좀 더 매진하겠다는 얘기다.
오후 6시,수녀들의 저녁기도 소리가 성당과 수도원에 나즈막히 울려퍼진다.
'오직 하느님만' 의지했던 성녀 줄리와 힐리곤데의 영성을 표상하는 해바라기 몇 송이가 수도원 성당 앞을 지키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