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元巖 < 홍익대 교수·경제학 >

신임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주목을 받았다.

도덕적 결함이 있었다거나 부정축재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경제철학이 많은 사람들이 짐작했던 방향과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김대중 정부 말 재경부 차관보 시절에는 경기부양정책을 추진했지만 최근 경기둔화에 대해서는 경기부양에 부정적 견해를 제시했며,성장과 분배 문제와 관련해서도 참여정부의 동반성장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뜻을 비쳤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권 부총리가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똑같이 청문회를 거쳤던 김병준 부총리와는 달리 왜 권 부총리의 속마음만은 알고 싶은 것일까? 김 전부총리는 표리(表裏) 동일하지만 권 부총리는 표리부동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김 부총리가 교수 출신인 데 비해 권 부총리는 정통 경제관료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권 부총리와 같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도 안되던 시절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수출주도 고도성장과 산업화 과정을 입안하고 그 성과에 크나큰 자긍심을 가지는 전문직 공무원들이다.

권 부총리보다 일찍 1960년대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의 자긍심은 이보다 한층 더 크다.

그들은 시장경쟁이 활성화되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 수출을 통한 경쟁력 제고와 산업화의 기반을 다지고,성장을 통해 분배 개선을 이루고자 했다.

이러한 정통 경제관료들의 사고와 업적에 비춰볼 때,여러가지 악재로 경기가 빠른 속도로 둔화되고 있음에도 경기부양을 배제하는 가운데 분배를 강조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동반성장을 하겠다는 발언이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물론 현재 경제사회 여건은 정통 경제관료들이 많은 기여를 한 60∼70년대와 크게 다르다.

경제관료들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한국동란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하는 환란(換亂)을 맞으면서 정부개혁이 국가의 4대 개혁과제로 자리잡게 되고,정통 경제관료들의 자긍심도 큰 상처를 입게 됐다.

게다가 환란 이후 정권 교체로 정책노선이 바뀌면서 과거의 고도성장을 개발독재 산업화 과정으로 폄하하는 세력이 강해지고 있다.

최근 영화 '괴물'이 공전의 흥행을 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괴물'은 바로 국가권력이다.

한강에 갑자기 나타난 괴물에 잡혀간 딸이 살아있다고 해도 국가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괴(怪)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군병력을 출동시키고 딸을 구하려는 가족들을 잡아들이려 한다.

괴물을 퇴치한 것은 피해자의 가족이지 국민의 복리를 책임진 국가가 아니다.

국가를 '괴물'로 비유한 사람은 17세기의 정치사상가 토머스 홉스였다.

그는 자연상태의 인간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하게 된다고 보고,법으로 자신들을 통치할 권력체인 '리바이어던'을 만들어 투쟁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바이어던'은 성서에 나오는 바다의 괴물이다.

절대왕정의 집행기구로 태동한 관료제(官僚制)도 흔히 '괴물'에 비유되고 있다.

이렇게 국가권력이나 관료제가 '괴물'로 영화화되어 공전의 흥행을 하는 와중에서 정통 경제관료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전문적 역량을 보이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권 부총리의 속마음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통 경제관료들이 정치적 구속에서 벗어나 정당 대신 국민에게 봉사하는 전문 테크노크라트의 역할을 수행해 줄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국가권력을 '괴물'로 치부하고 쉽사리 부정하게 되면 홉스가 경고한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의 혼란이 올 수도 있다.

공무원들이 복지부동(伏地不動)하지 말고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서 전문적 역량을 발휘하여 국민에게 봉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