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 본사 주필 >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황제경영을 하고 있다."

이른바 재벌로 불리는 대기업그룹의 지배구조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론이다.

과연 옳은 주장인가.

얼핏 보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이해가 잘 안된다.

그렇다면 100%의 지분을 가진 주주만이 기업의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또 주식을 전혀 소유하지 않은 전문경영인이 경영의 전권을 행사하는 이른바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전혀 터무니없다는 말 아닌가.

그런데도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대기업그룹의 소유지분구조를 발표한다.

올해 4월1일 기준으로 보면 출자총액제한제도 대상기업 14개그룹은 기업 총수일가의 소유지분이 평균 6.36%에 불과한데도 의결권 지분은 37.65%에 달했다. 의결권 승수도 7.47배나 된다고 돼있다.

그래서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을 계속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자는 여당의 제안이 나오자 공정위가 순환출자 금지 등 대안을 마련한 연후라야 가능하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거대 기업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순환출자로 인한 '가공자본' 때문이라는 인식의 함정에 빠져있는 탓이다.

예컨대 100억원의 자본금으로 회사를 설립하고,그 회사가 또 다른 회사에 투자하는 식으로 여러 개의 연결고리로 많은 회사를 만들게 되면 결국 실질자본은 100억원뿐인데도 계열회사 전부를 합치면 자본금이 실제 돈의 대여섯 배에 이를 정도로 자본이 부풀려진다는 얘기다.

따져보면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계산법이 경제논리에 맞는 것인지,그것을 가공자본이라 부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지,또 '가공자본'이라 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경제에 해악을 주는 것이기나 한지 궁금한 게 너무나 많다.

자본주의 사회의 최대 발명이라고 하는 주식회사 제도의 메커니즘을 인정하는 한 여기서 말하는 가공자본은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연결재무제표이고 결합재무제표이다.

이는 한마디로 가공자본을 걷어내고 기업의 내용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본이 투자활동을 거쳐 증식되는 과정이 곧 경제성장이고 국가발전 아닌가.

그런데 순환출자규제는 이를 못하게 처음부터 쐐기를 박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백번 양보하더라도 적은 돈으로 가능한한 많은 기업을 만들어 생산활동을 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한다면 요즘같이 어려운 판국에는 오히려 선(善)이고 더 장려해야 할 일 아닌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는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대안을 마련한 다음에야 가능하다는 공정위의 구상을 듣고 있으면,정책 당국이 아직도 왜 이런 관념에 빠져 있는지 너무도 궁금하다.

경제계는 순환출자를 제한하려면 차라리 지금의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놔두는 편이 낫다고까지 얘기하는 모양이다.

가뜩이나 기업지배구조가 취약해 외국자본의 인수합병 사냥감으로 노출돼 있는 판에,한술 더 떠 순환출자까지 엄격하게 규제한다면 아예 수많은 기업을 외국인들에게 넘겨주자는 얘기와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지금 정부는 물론이고 모든 경제전문가들이 경제활력을 되찾기 위한 최우선적인 방안으로 꼽고 있는 것이 투자를 늘리는 방안이다.

그런데 공정위는 거꾸로 가는 처방을 내놓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목소리 큰 시민단체들의 재벌정책 후퇴에 대한 비판론이 그렇게도 부담스러운가.

공정위로서는 대기업 집단의 횡포를 근절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의 룰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뜯어고치는 것과 시장의 공정경쟁이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공정거래법에 경제력집중 억제조항이 포함된 것 자체가 횡포이고 억지라는 얘기다.

설령 개발연대의 기형적 기업행태가 불러온 예외적인 조치이고 제도였다고 해도 이제는 버려야 할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