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거듭된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언급에도 불구하고 권오승 공정위원장은 "대안 마련 후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 대안이라는 것이 '순환출자 규제'로,공정위는 4일 열리는 시장경제선진화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자체적인 순환출자금지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도대체 정부가 기업규제를 개혁(改革)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기나 한건지 의문스럽다.

공정위의 이 같은 입장은 한마디로 기업에 대한 출자 규제의 고삐를 계속 죄겠다는 것이다.

순환출자 규제가 대기업 총수의 보유지분에 비해 과도한 지배력 행사를 막겠다는 취지이지만,필연적으로 기업투자를 위축(萎縮)시키고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해 수많은 우량 기업들을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큰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그동안 수없이 출총제의 폐지를 촉구해온 것은 대기업 투자에 족쇄를 채워 성장의 발목을 잡는데다,이로 인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나 기간산업들이 무방비로 외국자본의 사냥감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다시 순환출자 규제로 이름만 바꿔 기업 투자에 올가미를 씌운다면 출총제 폐지가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공정위가 문제삼는 지배구조만 해도 그렇다. 어떤 지배구조가 최선인지 그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솔직히 지배구조가 어떻든 기업이 더 많은 일자리와 수익을 창출해 국가경제에 대한 기여도를 높인다면 그것이 최선이지 않은가. 정부가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강요하는 것 부터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공정위가 본연의 '경쟁촉진'보다는 이처럼 지배구조에 집착하고 대기업을 규제하는 까닭을 정말 모르겠다.

더구나 순환출자 규제가 기존의 대기업 출자구조에 적용될 경우 그 심각한 파장을 생각해보았는지 공정위에 묻고 싶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민 기업'들까지 적대적 M&A의 위협에 노출됨으로써 엄청난 경영권 방어비용 지출 등 불필요한 낭비의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공정위는 대안만을 고집하지 말고 당장 출총제부터 폐지할 일이다.

기업 투자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다면서 순환출자 금지와 같은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것은 한마디로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더 이상 기업의 손발을 묶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