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시에 사는 윤모씨(36·여)는 지난해 말 집을 담보로 대부업자 김모씨로부터 1500만원을 대출받았다.

미등록 대부업자였던 김씨는 "대출을 빨리 해줄테니 계약서에 대출금액을 3000만원으로 써달라"며 "업계의 관행"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업(up)계약서'를 요구한 것이다.

카드빚 독촉에 시달리던 윤씨는 "그래도 1500만원만 갚으면 된다"는 말을 믿고 그대로 해줬다.

하지만 이게 화근이 됐다.



윤씨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김씨는 담보물인 집을 경매에 넘기면서 "경매를 풀려면 계약서대로 3000만원을 갚으라"고 요구한 것.윤씨는 김씨를 사기죄로 고소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3000만원을 빌렸다는 계약서에 윤씨의 서명이 있어 이 계약서가 가짜라는 점을 입증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대부업계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미등록업자들의 탈법 불법적인 횡포다.

등록 대부업체들의 모임인 한국대부소비자금융협회(한대협)가 지난달 10일 '대부업 피해신고센터'(02-3487-5800)를 설립한 것도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한 관계자는 "경찰에 대부업 피해 사건을 전담하는 부서가 생겨야 할 정도"라며 "피해 사례가 늘어난다면 더이상 대부업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실제 '업 계약서'를 통해 법정 이자율(66%)을 초과한 돈을 받는 사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대부업피해신고센터가 피해사례를 접수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무려 120건이 접수됐고,이 중 24건(20%)이 '업 계약서'를 이용한 사기였다.

수수료만 챙기고 잠적하는 형태가 32%로 가장 많았다.

담보 차량을 속칭 '대포차'로 팔아버리는 불법 자동차 담보대출이나 명의 도용 대출 등 불법 편법 유형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더 큰 문제는 등록업자와 미등록업자를 구분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한대협은 현재 1만6000여 등록업체 중 최대 5000개 정도만 실질적인 영업을 하고 있고,1만개가 넘는 나머지 업체는 개점휴업 상태거나 대출 중개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문경 한대협 부회장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업체들이 문을 닫으면서 미등록 업자들에게 명의를 빌려주거나 미등록 업자들과 결탁해 불법적인 고금리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일부 미등록 업자들이 살인적인 고금리를 받아챙기면서 대부업 이자율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실제 금융감독원 사금융피해상담센터에 신고된 미등록 대부업체의 평균 금리는 2002년 연 197%에서 지난해 229%까지 상승했다.

민주노동당 등 정치권 일부에서 "서민들에게 폭리를 부담시키고 있는 사금융 시장의 폐해를 줄이려면 대부업체의 이자율 상한선을 현행 66%에서 (법무부에서 추진하는 이자율제한법과 같은 수준인) 40%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물론 재정경제부와 대부업계는 현실을 모르는 발상이라고 맞서고 있다.

중견 대부업체인 머니라이프의 김경조 사장은 "연 66%의 이자율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업체가 300개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이자율 상한을 40%로 낮추면 음지로 숨어드는 업체가 더욱 많아지게 된다"며 "그러면 오히려 서민들이 돈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뿐"이라고 말한다.

소비자금융 전문가인 김대호 산업경영연구소장도 "법정이자율을 내리는 것보다는 연체나 부실이 생기면 대부업체도 채무자와 함께 공동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부업체 간의 시장경쟁을 통해 금리 인하를 유도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란 설명이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