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워킹구 푸아(일본식 발음, working poor)'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죽어라 일을 해도 돈을 벌지 못해 생활고를 겪는 빈곤층을 뜻한다.

장기 불황기에 구조 조정을 거치면서 일자리를 잃고 임시직 등으로 살아가는 가구로 월 평균 수입은 20만엔이 안된다.

이들은 일본경제가 디플레(경기침체 속의 물가하락)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양산되고 있다.

경기회복 바람을 타지 못하고 도태되고 있는 사람들이다.

9월20일 예정된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도 일반 시민들의 관심은 차기 총리보다는 '탈(脫) 디플레 시대'의 생존에 쏠리고 있다.

올들어 도쿄 오사카 등 주요 도시의 공시 지가는 15년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경제재정성은 7월 하순 경기 회복의 마지막 관문이던 디플레에서 벗어났음을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에 격차가 벌어지고,샐러리맨 사이에도 임금차가 커져 불만이 커졌다.

세계 2대 경제대국이면서도 90% 중류층을 자랑해온 평등사회 신화도 깨졌다.

유력한 총리 후보인 아베 신조 관방장관(52)조차 차기 정권의 최대 과제로 재정 건전화와 소득 격차 해소를 꼽고 있다.

일본인뿐만 아니다.

한국기업과 주재원들도 또 다른 차원에서 '탈 디플레'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한국 기업들은 요즘 사무실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는 건물주와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부쩍 늘었다.

진로재팬은 임대료를 한꺼번에 30%가량 올려달라고 요구해 사무실을 변두리로 이전했다.

아파트 임대료도 올라 주재원들은 재계약 때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주재원들이 몰려사는 신주쿠 도쿄한국학교 인근 아파트의 월 임대료(약 30평 기준)는 지난해 25만~35만엔에서 30만~40만엔 선으로 15% 이상 올랐다.

한국 기업의 경우 교외로 이사를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탈 디플레 현상이 한국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중상층 소비자들이 본격적으로 지갑을 열면서 소비시장은 활황세를 보이고 있다.

자동차 등 고가 수입품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경제대국 일본의 탈 디플레 시대는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