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 논설위원 >

아파트값 담합을 단속한다고 정부가 뒷북칠 때부터 이런 우스꽝스런 일이 벌어질 줄 짐작했다.

'재수없이' 걸려든 곳은 한결같이 서울과 수도권 변두리 단지다.

서울 강남 서초 송파 목동,경기도 분당 평촌 용인 등 이른바 '버블세븐'은 모조리 빠져나갔다.

이상할 것도 없다.

버블세븐에 지금은 담합이 없으니까.

정부 설명이 그렇다.

이들 지역의 집값이 이미 많이 올라 담합할 필요가 없고,담합 피해신고나 증거물인 현수막·유인물도 없었다는 얘기다.

어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다는 건지,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따로 없다.

아무튼 이번 담합조사로 확인된 것은 버블세븐의 아파트값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결과가 그렇게 됐다.

'버블 붕괴'의 경고까지 하면서 잔뜩 겁을 주었던 정부 스스로가 버블세븐의 시세에 이상이 없음을 인정해버린 꼴이다.

무슨 근거에서 버블로 규정했는지 이제 어떻게 설명할 건가.

이러니 담합의 원조(元祖)인 '강남 아줌마'들은 '그것 봐라'며 코웃음치고,담합 아파트 주민들은 "누구 약올리느냐"는 반응이다.

"아무리 생활여건과 교육환경이 뛰어나고 부자동네 이름값이라 해도 그렇지,도대체 한쪽은 32평 아파트가 3억원이 안되는데 강남은 10억원씩 할수 있으냐.그걸 납득하지 못하겠다.

우리 집값이 형편없이 저평가됐으니 이제라도 제값 받아야겠다.

그런데 강남 집값잡기에 실패한 정부가 애꿎게 우리만 못살게 군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망신을 당한 곳은 담합 아파트가 아니라 담합을 뿌리뽑겠다고 엄포만 놓고 몸통에는 다가가지도 못한 채 겨우 꼬리만 건드린 정부인 셈이다.

이런 무책임하고 터무니없는 정책이 또 어디있나.

아파트값 담합이 사회악(社會惡)임에는 분명하다.

'못사는 동네'의 박탈감이 낳은 결과이기는 하지만,시장을 왜곡시켜 아직 집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절망감만 키우는 담합은 반드시 척결되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버블세븐이 빠진 아파트값 담합 공개와 같은 부동산 정책을 이제 누가 믿어줄 것이냐 하는 점이 문제다.

정부가 아무리 강남 집값이 거품이라고 주장하고 6억원 이상 집에 대해 '세금폭탄'을 떠안겨도,헌법만큼 바꾸기 어려운 부동산 정책을 만들고 '하늘이 두쪽나도 집값은 반드시 잡겠다'고 해도,그걸 신뢰할 국민은 이미 아무도 없게 됐다.

오히려 "2~3년만 두고 봐라.집값은 더 뛴다.

세금이 아무리 올라도 그건 집값에 얹으면 된다.

우리는 버틴다"는 게 강남 아줌마들의 '은밀한 담합'이다.

하기야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어도 집단은 도덕적이지 않다"는 게 고금(古今)의 법칙이다.

변두리 아파트 단지들의 '담합 반란'은 청와대나 과천 청사 책상물림들이 번번이 강남 아줌마들에게 당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럴 거면 무엇 때문에 담합을 조사하고 '애꿎은' 아파트단지들을 공개했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더 이상 이번 '담합 단속'같은 헛발질이 나와서는 안된다.

이런 식의 엉성한 방법으로 어떻게 집값을 잡을 수 있나.

집값이 상식을 벗어난 수준으로 뛰어오를 거라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은 없을까.

이도 저도 안되면 차라리 아파트값 올리기의 천재인 '강남 아줌마'들로부터 집값 내리는 방법에 대한 지혜를 빌려옴이 어떨는지….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