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한때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던 웹사이트 중 하나는 '제니캠(JenniCam)'이었다.

20대 초반의 웹디자이너 제니퍼가 운영하던 이 홈페이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혼자 사는 젊은 여자 제니퍼의 일상,곧 아침에 일어나 옷 갈아입고 밥 먹고 일하고 잠자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누군가 몰래 찍어 전송하는 게 아니라 제니퍼 스스로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거기에 찍힌 사진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프라이버시를 팔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남들이 인터넷으로 내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걸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엿보기는 사람들의 기본 욕구고,수많은 사람들이 쳐다본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인터넷 속의 일일 뿐 자신에게 어떤 직접적 영향도 미치기 어렵고 자신은 여전히 독립된 공간에 따로 있으니 상관없다고 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당시 그토록 충격적이던 '사생활 드러내기'가 이젠 미국사회의 일반적 현상이 됐다는 소식이다.

자신의 생각과 삶 모든 걸 알리고 퍼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퍼블리즌이란 새 부류가 등장했다는 얘기다.

퍼블리즌(Publizen)은 공개(publicity)와 시민(citizen)의 합성어.전같으면 남이 알까 무서워 쉬쉬했을 은밀한 사실까지 인터넷에 올리는 이들을 뜻한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퍼지는 퍼블리즌 신드롬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다.

'주위의 끝없는 관심 내지 감시 속에 성장,누가 봐주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하는 것''어차피 숨길 수 없으니 역으로 까발리는 것' 등.사회학자 리스먼은 '고독한 군중'에서 '현대인의 가장 큰 불안은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썼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4명 중 1명은 가족과 친지를 통틀어 '믿을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여긴다고 한다.

우리라고 크게 다르랴.퍼블리즌 확산은 휴대폰 주소록에 수백개의 전화번호가 있어도 정작 아쉬울 땐 돌릴 번호를 찾기 힘든 외롭고 외로운 사람들의 안간힘 내지 비명일지 모른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