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충북 음성군 용산리 밭 8000평에서 복숭아를 재배 중인 김상환씨(51).요즘 그는 일할 맛이 절로 난다.

복숭아 나무가 늘어나지 않았고 다른 부업이 없는 데도 몇 년 새 순수입이 연 65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2.최근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를 자정 무렵에 찾은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의 안재경 과장(44)은 노부부가 보관이 까다로운 복숭아 6박스를 쇼핑카트에 담는 것을 보고 의아해 했다.

이들은 "아침에 한 박스를 사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자녀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다시 왔다"고 말했다.

햇사레 복숭아가 인기몰이 중이다.

김씨가 정성껏 키운 복숭아와 노부부가 산 복숭아에는 '햇사레'라는 브랜드가 붙어 있다.

2002년 6월에 태어난 햇사레는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충북 음성군의 감곡면· 음성읍 등 복숭아 주산지로 유명한 2개 시·군과 4개 농협(장호원농협 경기동부과수농협 음성농협 감곡농협)의 통합 복숭아 브랜드.농협이 추진하고 있는 '지역연합사업'의 하나다.

여러 곳에서 생산하는 같은 종류의 농산물을 하나의 브랜드로 묶어 판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처음에는 농민들의 저항이 컸다.

장호원읍은 황도,음성군은 미백이란 복숭아로 유명해 주민들은 기존의 브랜드를 포기하면 망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안 과장은 "농협끼리 정보 공유는 하지 않고 경쟁만 했던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지역별 출하시기,출하량,요일·시기별 출하 특징 등을 철저히 조사한 자료를 내보인 뒤 힘을 모으면 가격 협상력이 커지고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자 하나 둘씩 마음의 문을 열었다.

브랜드를 통일한 후 까다롭게 품질을 관리하자 농민들이 또다시 반발했다.

각 지역에서 공동선별장으로 온 복숭아 가운데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제품은 무조건 돌려보냈다.

평균 20%가 반품됐다.

하지만 품질 이미지가 높아지면서 가격을 더 받게 되자 이런 불만이 사라졌다.

햇사레는 복숭아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 유통업체와 가격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2004년 8월 중 단 3일 동안 1개 군의 1년치 출하량에 해당하는 1만8000박스를 주문했으나 거뜬히 처리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햇사레 가격은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의 복숭아 기준 시세가 된다.

매일 새벽 2시 경매 때 햇사레 가격이 먼저 정해지고 이를 최고가로 해서 다른 지역 복숭아 값이 매겨진다.

햇사레가 뜨자 '짝퉁'도 등장했다.

지난해 여름 한 유통업체가 가짜 햇사레 박스에 복숭아를 담아 대형 할인점에 납품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햇사레 브랜드를 붙인 복숭아 가격이 다른 복숭아보다 2000∼4000원(4.5㎏박스당) 비싸기 때문이다.

장호원농협의 이재붕 조합장은 "강원도 원주지역의 복숭아 품질은 이천지역 못지 않지만 연간 출하량이 햇사레의 10% 정도여서 높은 값을 받지 못한다"며 "이 때문에 인근 읍·면 주민들이 햇사레로 납품하게 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농민들의 여가 시간이 늘어난 것도 햇사레 브랜드 도입 이후 달라진 모습이다.

과거 5000평 이상 밭에서 복숭아를 재배할 경우 농민들은 수확기 때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에 매달렸다.

지금은 오전 7시에 일을 시작하면 오전 10시면 끝난다.

복숭아를 따서 농협 공동선별장에 가져다 주면 일이 끝난다.

이곳에서 전문검품사들에 의해 등급별로 분류된 복숭아는 포장된 뒤 주문처로 보내진다.

음성농협 읍내지소의 박노대 지소장은 "농업도 이젠 브랜드시대"라며 "브랜드 파워를 높이면 농가 소득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음성(충북)=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