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역 건설노조의 포스코 본사 점거 농성과 관련해 18일 정부가 발표한 담화문은 이번 사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후 약방문식 처방'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엄정 대처'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노조가 자진 해산을 받아들일 경우 합법적으로 의견을 밝힐 기회를 주겠다고 하는 등 서둘러 '당근'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노사 자율 타결이 원칙인 노사협상 과정에 사실상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더구나 정부는 국내 최대 철강업체인 포스코가 건설노조에 볼모로 잡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데도 이렇다 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건설노조 파업에 대한 정부의 대응책이 2003년 화물연대 파업 때와 너무 닮았다"며 "정부가 노사교섭에 개입하면서 포스코를 직·간접적으로 협상테이블에 끌어들일 경우 포스코 SK 등 국가산업시설이 노동세력의 볼모가 되는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자측인 포항 건설협회 관계자도 "정부가 할 일은 공권력을 엄정하게 행사해 노조의 불법 점거사태를 하루빨리 종식시킨 후 노사자율의 협상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금 수준이 다른 곳보다 높다'

그동안 건설노조와의 물밑접촉을 통해 사태 해결에 나섰던 포항전문건설협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건설노조가 포스코 본사에서 자진해산하지 않으면 협상은 물론 기존 단체협약도 해지하겠다"고 초강경 입장을 밝혔다.

전문건설협회는 "현재 건설노조원들의 임금은 월 평균 300만∼400만원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평균 이상 수준"이라면서 "노조가 토요유급휴무와 외국인 근로자 고용제한 등 정부가 해결할 문제를 놓고 협상하자는 것은 노조 집행부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조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혀 포스코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방증하듯 그동안 이번 사태에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던 포스코는 이날 낮 12시부터 본사 건물에 전기공급은 물론 에어컨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갈피 못 잡는 경찰

지난 15,16일 두 차례에 걸쳐 경찰력을 투입했으나 건설노조 진압에 실패한 경찰은 이날 정부의 담화문이 발표되자 공권력 투입 시기가 다소 미뤄질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당분간 경찰은 본사 점거 노조원을 대상으로 자진 해산을 위한 설득작업에 무게를 두면서 강제 진압에 나서는 강온 양면전략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1차 공권력이 투입된 15일 이후부터 지금까지 450여명에 가까운 노조원이 농성장을 이탈했다"며 "포스코의 단전 조치로 이탈자는 더욱 늘어나 조만간 농성이 와해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민주노총은 19일 포항에서 '영남권 민주노총 노동자 대회'를 여는 등 건설노조 지원에 앞장서고 있어 이 같은 경찰의 기대가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시민들도 분노

포항상공회의소와 포항지역발전협의회,포항향토청년회 등 포항지역 3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포항종합운동장에서 '포항 경제살리기 범시민 궐기대회'를 열고 건설노조원들의 파업 중단을 촉구했다.

집회에는 해당 단체 회원 등 1만500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건설노조의 파업이 장기화하고 포스코 본사 점거 사태가 엿새째 이어지면서 침체된 포항 경기가 더 악화하는 것은 물론 도시 이미지 훼손까지 우려된다며 파업 사태가 하루빨리 해결되기를 정부와 경찰,건설노조에 요구했다.

포항=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