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 永 洙 < 고려대 교수.헌법학 >


우리나라가 일제(日帝)로부터 해방된 것은 1945년이지만, 독자적인 정부 수립은 1948년의 일이다.

주권국가로서 공인을 받고 헌법을 제정한 때가 바로 58년 전인 것이다.

그동안 우리 헌법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독재로 점철된 어두운 시대가 길게 이어지기도 했고, 주권자인 국민의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우리 헌법은 안정기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된다.

1987년 개헌을 통해 만들어진 현행 헌법은 역대 최장수 헌법으로서 근 20년간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정치과정의 민주화와 더불어 법치의 발전 또한 괄목(刮目)할 만하다.

그러나 제헌절을 맞아 우리 헌법의 성장을 자축하기 보다는 부족한 점을 확인하면서 미래로의 발전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이상적인 국가질서에 대한 동경(憧憬)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의 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법과 정의가 왜곡되고 무시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아직도 남은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 독재정권에 대항해 투쟁하던 시기에는 생명과 신체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지만,목표와 방법이 비교적 분명했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전된 이후에는 공동체 내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복잡한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이를 투쟁이 아닌 대화와 타협(妥協)으로 조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헌법을 정점으로 하는 법질서는 갈등해결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법이기에 늘 완벽한 해결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고,그 결과 일반국민뿐만 아니라 법전문가들까지 특정한 법내용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문제점이 심각한 경우에는 문제되는 법이 국회에서 개·폐되거나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무엇이 정의인지에 대한 생각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

노예제도가 정의롭다고 생각하던 시대도 있었고,여성에게 영혼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누가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렇듯 정의에 대한 생각의 변화와 더불어 법도 시대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법인 헌법도 국민적 합의에 기초해 개정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서도 법의 정당성에 대한 생각이 엇갈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존중되고 준수돼야 한다.

법은,특히 민주국가의 법은 국민의사의 표현이다.

비록 국민이 직접 법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들이 국민의 의사를 수렴해 법을 제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한 권한을 가진 대표자들이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제정한 법은 -그것이 개정 또는 폐지될 때까지- 효력을 가지며, 국민들은 이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폭력시위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은 것도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정당한 절차를 지키지 않는 것은 법과 정의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법만을 지키려 한다면 법이 법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며, 정의는 힘의 논리에 밀리게 될 것이다.

권력과 힘을 가진 이른바 사회지도층에서 법을 지키지 않는 예도 여전히 많이 눈에 띄고 있다.

이른바 권력형 비리가 문제되는 경우도 있고, 일선 행정관청의 편의주의에 따라 법과 원칙이 깨뜨려지는 경우도 있으며,심지어 사법부에서조차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가 이야기되고 있다.

헌법에 의해 구성되고 법과 정의를 지켜야 할 국가권력이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주권자인 국민이 이를 감시하고 통제할 수밖에 없다.

국민을 존중하는 만큼 헌법을 준수하도록 국가권력의 담당자들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