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元巖 < 홍익대 교수·경제학 >

지난 5·31선거는 충격적이었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참여정부와 여당이 2년 만에 참패하고 말았다.

물론 유세 기간 중에 제1 야당 대표가 자상(刺傷)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이 일로 이렇게까지 참패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선거는 지방선거임에도 참여정부의 '좌파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을 띠게 됐다.

표는 돈보다 무섭다고 하던가? 선거가 끝나고 서민생활이 갑자기 쪼들리게 된 것도 아닌데 선거 후 정부와 여당은 서민경제를 걱정하고 있다.

표 폭탄이 세금 폭탄보다 무서운가? 헌법과 같이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던 부동산 정책이 폭탄이 투하되기도 전에 완화·수정되려 한다.

그럼 이쯤에서 지난 선거를 복기(復棋)해 보자.선거 전만 해도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에 대한 '세금 폭탄'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

강남 부유층에게 중과세하면 박수치는 사람들이 많아져 표로 연결될 것으로 계산한 듯하다.

이에 더해 대통령은 신년담화를 통해서 우리 경제사회의 양극화(兩極化) 문제를 지적하고 상위 소득계층 과세를 통한 분배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자 언론기관들은 대통령이 신년벽두부터 양극화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이 선거전략이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양극화가 심화돼 서민경제가 어려워졌다면 언뜻 생각하기에 정부와 여당은 이를 감추려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잘 나가는 20%'와 '희망없는 80%'를 대비시킴으로써 80%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적 계산에 탄복하기까지 했다.

사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걱정할 만한 수준이다.

지니계수로 소득의 불평등도를 살펴보면 참여정부 들어 소득분배는 소폭 악화에 그치고 있어서 양극화 문제를 실제보다 부풀리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부동산 가격과 주가 상승에 의한 자본이득,빈곤층이 빈곤층으로 남아 있는 소득이동 정도를 추가적으로 고려(考慮)해 보면 양극화 현상이 훨씬 심각하다.

그런데도 분배와 평등을 강조하는 양극화 전략이 선거에서 먹히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일부서 주장하는 대로 과거 압축성장 때문이든,승자독식의 카지노 시장경제 때문이든,국민의 60%가 소득이 줄어들고 40%가 소득이 늘어나서 양극화가 심화된다고 하자.양극화 초기에는 소득이 줄어드는 60%가 분배와 평등을 강조하는 정책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분배(分配)가 개선되지 않고 국민의 40%는 계속 소득이 악화된다고 하자.그러면 나머지 국민 60% 중 3분의 1만 소득이 줄어들게 되므로 이들은 소득상승의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재분배 정책에 반대하게 된다.

또한 소득이 계속 악화되는 40%도 정부 정책에 실망한 나머지 반대표를 던지게 된다.

양극화가 심화될 때 성장보다 분배를 강조하면 득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략은 양극화 초기에나 통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도 양극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앞서 설명한 대로 반대표가 늘어난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미국의 경제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정치도 당파적 양극화가 심화됐음을 지적하고,중산층(中産層)이 몰락하는 사회에서 초당파적 정치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경제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정치적으로도 양극화가 심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선거가 끝나자 양극화 개선의 성과 없이는 정치적으로 지지를 얻을 수 없음을 절감한 여당이 서민경제 회복에 주력하려 한다.

그러나 '경제회복'이 아니라 '서민경제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당의 정책노선이 변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제양극화가 완화되면 정치양극화도 덩달아 완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