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법원 옆 언덕 위에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4층 건물이 하나 있다.

지중해풍의 갈색 외벽과 앙증맞게 서있는 우편함은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듯한 모습이다.

아기자기한 글씨체로 변호사 이름이 씌어진 팻말을 처마 밑에 달아 놓지 않았다면 변호사 사무실이라고 상상하기 힘들다.

3일 변호사 업계에 따르면 변호사 사무실 인테리어가 달라지고 있다.

오피스 빌딩 공간을 칸막이로 나누고 좁은 공간에 각종 문서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변호사 사무실이 사라지고 있다.


밝은 색 계열의 인테리어로 아늑한 공간을 연출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불어넣은 변호사 사무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이 같은 개념의 사무실은 신규 고객을 창출하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동화 같은 건물은 엄상익 변호사 사무실이다.

그는 1998년 미술가인 아내 신정행씨와 함께 이탈리아 카프리 섬과 소렌토 등지를 여행하면서 눈여겨 보았던 뒷골목의 집들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신씨가 직접 인테리어를 했다.

이곳에 들어서면 벽 곳곳에 그림이 걸려 있어 마치 갤러리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엄 변호사가 법원에 제출하는 각종 서면과 신문 기고문 등을 집필하는 공간인 사무실 4층은 각종 골동품으로 가득하다.

엄 변호사는 "마음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변호사인데 변호사 사무실 분위기가 딱딱해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한강현 변호사는 일과 휴식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사무실을 꾸몄다.

그의 사무실 한 편에는 서예 연습을 위한 작은 책상이 놓여 있다.

또 그 앞에는 그가 바이올린 연습을 할 때 쓰는 악보대가 서 있다.

각종 대회에서 이미 세 차례나 입선했을 정도로 수준급 서예가이자 초보 바이올리니스트인 한 변호사는 "일과 취미를 굳이 구분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는 주말이면 사무실에 나와 밀린 일을 하면서 최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바이올린 연습에 몰두하곤 한다.

그러나 한 변호사가 자신의 취향만을 생각해 사무실을 꾸민 것은 아니다.

서예용 한지와 악보대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고 한다.

사무실 한 편에 있는 고급 오디오는 의뢰인과 상담할 때 '배경 음악'을 깔아주는 용도다.

한 변호사는 "봄에는 밝은 리듬의 바이올린 곡을, 가을이나 겨울에는 첼로 곡을 많이 틀어 놓는다"며 "변호사와 의뢰인 모두 감정을 진정시킨 상태에서 대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관기 변호사는 서초동 단독 주택을 사무실로 쓰고 있다.

1가구 2주택 소유자였던 김 변호사는 지난해 건평 35평에 지상2층 지하1층인 집 한 채를 사무실로 용도를 바꿨다.

개인파산 사건을 주로 맡아 온 그에게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사무실이 오히려 장점이 됐다.

김 변호사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온 의뢰인들이 일반 가정집 같은 분위기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사무실 지하 1층은 주말이면 의뢰인들로 가득 찬다.

고액 채무에 시달리는 아픔을 공유한 의뢰인들이 모여 대화하고 식사를 함께 하는 일이 언제부터인가 정례화됐다.

김 변호사도 가끔 참석하는 이 자리에는 매번 30여명의 사람들이 모인다.

변호사 사무실 인테리어 전문업체인 엘티스의 임대규 이사는 "요즘 개업하는 변호사들은 천편일률적인 사무실 인테리어를 거부하고 있다"며 "일일이 맞춰 주기 어려울 만큼 요구 사항이 다양하다"고 밝혔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