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작고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일본 총리는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이었던 옛 하시모토파를 이끌다 부정 헌금사건으로 법정 증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등 성쇠를 겪었던 일본 정계의 대표적인 보수 정객이었다.

1937년생으로 게이오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가 전 후생상이었던 부친이 사망하자 1963년 중의원 선거에 출마, 당시로서는 최연소인 26세에 금배지를 달았다.

그 이래 내리 14선을 기록했으며 오히라(大平) 내각 때 후생상(41세)으로 첫 입각했다.

1980년 당 행정재정조사회장에 취임한 뒤 총리부와 행정관리청을 총무부로 통합한 것을 시작으로 1986년 나카소네 내각에서 운수상으로 국철분할과 민영화를 추진하는 등 고이즈미(小泉) 정권에 이르러 완성된 행정개혁의 대시동을 걸었다.

보통 '후생족(族)'으로 알려졌지만 행정개혁과 외교, 경제 등의 정책에 두루 밝아 당내 정책통으로 불렸고 논쟁을 즐겨 '논쟁광' '한마리 늑대' 등의 닉네임을 얻었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중의원 의장 등과 경합했다.

자민당 간사장과 대장상, 통산상 등을 역임했으며 1995년 고이즈미 현 총리를 큰 차이로 물리치고 자민당 총재가 됐다.

이듬해 1월 제84대 총리로 취임했다.

같은 해 10월의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239석을 차지했으나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사회당 등의 협력을 얻어 연립내각을 구성한 뒤 11월에 총리에 재선돼 제2차 하시모토 내각을 발족시켰다.

재임 중 행정.경제구조.재정 등 6개 개혁을 당면과제로 내걸고 일본의 전면 개혁에 착수했다.

'중앙관서개혁 기본법' '재정구조개혁 특별조치법' 등 일련의 개혁이 추진됐다.

오키나와(沖繩) 후덴마(普天間) 소재 주일미군 해병대기지를 반환받기로 합의했다.

특히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주일미군 및 아.태지역 미군 수준의 유지를 골자로 한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채택하고 방위협력대상을 '일본 주변 유사시'로 확대한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첫 확대 개정, 미.일 군사동맹을 굳건히했다.

하시모토 내각은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의 전면 결정을 통해 독도를 기점으로 한 일본 정부의 경제수역 방침을 공식화, 독도 갈등을 증폭시켰으며 독도영유권 주장을 공약으로 내걸고 재집권하기까지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서한으로 사과했으나 교과서의 위안부 기술을 '재고'해야한다고 발언하거나 위안부에 대한 국가보상을 외면한 채 비밀리에 민간보상에 나서 파문을 일으켰다.

또 1996년 7월 일본 총리로서는 11년만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등 신사참배에 앞장서 한국과 중국의 격한 반발을 초래했다.

반면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합의를 통해 양국 관계를 한단계 도약시키는데 기여했다.

결국 하시모토 총리는 경제상황에 대한 판단착오, 소비세 인상에 따른 경기후퇴의 심각화 등이 국민의 불신을 야기한 결과 1998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했고 총리직을 물러났다.

2000년 오부치 전 총리의 퇴임으로 옛 하시모토파 파벌회장에 취임했으며 이듬해 당 총재선거에 출마했으나 고이즈미 총리에게 고배를 마셨다.

"자민당을 깨부수겠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선언 아래서 이른바 '철의 결속'을 자랑하던 옛 하시모토파는 구심력을 잃었다.

2003년 당 총재선거에서 파벌 독자후보를 옹립하는 그룹과 고이즈미 총리를 지지하는 그룹으로 나뉘어 사실상 파벌이 분열됐다.

2004년에는 파벌이 일본치과의사연맹으로부터 1억엔의 헌금을 부정하게 받은 의혹이 제기돼 국회 정치윤리심사위원회와 법원 등에 증인으로 불려나가는 수모를 당한 뒤 비례대표 공천도 받지 못하자 지난해 8월 정계를 은퇴하고 지역구를 차남에게 물려주었다.

지난 3월에는 악화된 일.중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주석을 면담하기도 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정치적 행보였다.

자민당을 대표하는 보수 정객으로서 논리 정연한 언변과 절도있는 행동이 돋보였으며 멋진 정장 차림에 기름을 발라 넘긴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여서 주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성격이 차갑고 독불장군이라는 평이 많았다.

일본 우익세력의 본산격이자 자민당의 유력 정치 기반인 일본 유족회 회장을 역임한 우익정치인이었다.

검도 5단에 사진 촬영도 프로급이었다.

(도쿄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