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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여록] 섣부른 선진금융 베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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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환위기를 막 벗어난 2000년 4월.외국계 은행인 HSBC는 양도성예금증서(CD) 연동 주택담보대출을 국내 처음으로 소개했다.

    지금은 일반화돼 있지만 고정금리 대출이 전부였던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시장금리 하락시 대출이자가 낮아지는데다 초기 대출금리가 국내은행의 고정금리 상품에 비해 1%포인트 이상 저렴해 고객의 반응이 뜨거웠다.

    2개월간 HSBC 10개 지점에서 3000억원 이상 팔려나갔다.

    한달 후.씨티은행과 제일은행도 CD연동 대출을 내놓았다.

    이들 세 외국계은행이 '신무기'로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자 토종은행들도 앞다퉈 똑같은 상품을 카피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금리하락세와 맞물려 소비자들에게 적지 않은 이익을 가져다줬다.

    그때 이후 금리하락으로 변동금리 대출이자가 연8~9%에서 최근 5~6%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은행인 씨티,HSBC의 CD연동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당시 가계대출에 관한 노하우가 부족했고,선진금융기법에 목말랐던 국내은행은 '바로 저것이구나!'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로부터 CD연동 주택담보대출은 유행처럼 번졌으며 지난 5월 현재 시중은행의 변동금리부 주택대출 비중은 90~95%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에 CD연동 대출을 '전수한' 씨티,HSBC 등도 정작 미국이나 영국 등 본토에서는 CD연동 대출금리 체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변동금리부 대출의 잠재 위험을 감안해 금융회사들로 하여금 고정금리 대출로 유도하고 있다.

    OECD국가 주택대출 가운데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70~80%에 이를 정도다.

    "잘못된 선진금융 기법을 전수받아 수업료를 톡톡히 치르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 우려가 요즘 현실화되는 것 같다.

    최근 시장금리가 오르자 변동금리 대출의 위험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작년 8월 연 3.4%대였던 CD금리가 연 4.6%대까지 치솟았다.

    현재 주택대출 잔액 200조원을 감안하면 이자비용만 2조4000억원 늘어난 셈이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일반 가정에 고스란히 전가되는 비용이다.

    실력없는 국내 은행들의 섣부른 선진금융 베끼기에 서민들의 한숨만 커지고 있다.

    장진모 금융부 기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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